달력

7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조금 , 부족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없었지만 그저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던 시기가 있었다. 성인 남자 4명이 있기에는 좁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꾸밀 구상을 상의하고, 조금 특별한 날에는 초라하지만 정겨운 포장마차에서 모여앉아 음식을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것처럼 우쭐대던 시기가 있었다.


종종, 그 시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윤택명훈] 행복을 주는 사람




슈퍼스타 K3 우승.

어 느정도 시나리오를 짜뒀었고, 정말 엄청난 노력을 통해 간신히 이룩한 결과. 처음부터 우승을 목표로 했었지만, 역시나 불안감이 없었던것이 아닌만큼 진정으로 다가온 그 결과는 행복했다. 그런 행복속에서도 명훈형은 언제나 얕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공인이 된다는게, 옳은 걸까? 언젠가.. 이 결정 후회하면 어쩌지?"



어두운 명훈의 모습에 내가 묻자, 명훈이 조용히 되물었다.



"광선아, 난 그게 걱정된다. 사실 나는 인기도, 돈도, 명예도, 모두 필요없었으니까."



조그만 몸임에도 너무나 어른스러운 형은 슬프게 웃었다.



"인기를 얻고, 명예를 얻고, 돈을 얻어도, 우리 멤버들이 없으면 난.. 그런거 전부, 필요없어."
"그건 승일형도, 윤택형도, 저도 마찬가지에요."
"... 응."





*





명훈형의 걱정은 괜한것이 아니었다. 우승을 한 우리에 대한 비방, 모함, 갖은 악플들. 특히 많은 것은 윤택형에 대한 것이었다.

암버프라던가, 거짓말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어떻게 살아있느냐는 그런 말까지.

윤 택형은 담담했다. 승일형은 화를 냈지만 그것은 한 순간일뿐, 아예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너무나 분해서 울면서 괴로워하는 나와는 달리 명훈형은 의외로 대범하게 행동했다. 사실 이해되지 않았다. 윤택형의 연인이면서 저렇게 담담할 수 있다는게.

명 훈형은 우리들 중 제일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윤택형의 소식을 들었을때도, 우승하던 그 순간마저 제 감정을 토해내기보단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윤택형의 치료가 계속되고, 온갖 행사를 다니면서도 명훈형은 제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았다. 울랄라세션의 일이라면 제일 감정적이면서, 어떻게 자신의 감정에는 저리도 이성적인지..

정말로 바쁜 일정과 녹음을 병행하면서도 지독하게 냉정하게 행하던 명훈형이 감정을 드러낸 것은 다음날, 불후의 명곡을 위한 준비로 한참 바쁘던 녹화 전날의 일이었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지속되던 연습에 잔뜩 지친채 잠시 휴식을 취한답시고 다들 연습실에서 쉬고있을때, 명훈형이 담담한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봤다.



"윤택형."
"응?"
"승일이형."
"왜?"
"광선아."
"네?"



우리의 이름을 부른채 한참을 침묵하던 명훈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게.. 이 길이.. 정말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 맞는거에요?"



그 말에 윤택형도, 승일형도, 나도, 그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그동안 불평 한마디, 감정 한조각 내비치지 않은채 꽁꽁 싸매두기만 하던 형이 건넨 그 한마디는 너무나 무거웠다.



"아무것도 바라진 않았는데, 사람들의 그 시선을 의식해야만 하는, 더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생활이.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입으면서도 아무렇지않게 넘기는 이 생활이 정말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눈 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울먹이는 명훈형의 모습에 괜스레 나도 울컥해졌다. 조심히 어깨를 토닥이는 승일형의 행동에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명훈형에게 다가간 윤택형이 명훈형을 감싸안았다. 가늘고 작은 몸은 병으로 인해 약해진 윤택형의 품안에도 쉬이 안겼다.



"행복한 길, 맞을꺼야. 그러니 울지마라. 응?"



으,, 흐윽... 흐으으윽- 흐아아아앙-

서럽게 아이마냥 울음을 터뜨리는 명훈형의 모습에 괜히 자책감이 들었다. 슈퍼스타 K3이 끝나고 하던 명훈형의 얘기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 무엇보다도 울랄라세션을, 임윤택을 좋아하는 명훈형의 그 걱정이.

명훈형의 울음을 기점으로 그 날, 우리는 다들 모여앉아 한참을 울었다.





*





"명훈아."



옆 에서 인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치료의 부작용으로 인해 쉰 목소리가 조심히 명훈을 불렀다. 아무렇지 않게 옆자리에 앉으며, 상냥하게 손을 감싸오는 온기를 느끼며 명훈의 눈이 윤택을 향했다. 언제나처럼 근사한 미소를 지은 연인이 다정한 눈으로 명훈을 응시했다.



"사람들의 비방, 악플에 상처입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승일이가 있고, 광선이가 있고."
"..."
"그리고 그 무엇보다 네가 있어."
"형."
"그러니, 걱정하지마."



상냥한 음성에 명훈이 힘없이 윤택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병을 앓은 이후 약해진 윤택에게조차 가볍게 느껴질만큼 가벼운 명훈의 몸을 느끼며 윤택이 명훈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이 온기가 있는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Posted by Lucy_jey
|

이건, 애정일까?
아니면 그저 소유욕?



이 감정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든 난, 너를 소중히 여긴다.




[윤택광선] 날지 못하는 새




어 릴적 부모님을 잃은 광선의 보호자는 다른이도 아닌 임윤택이었다. 실제로는 10살의 차이였지만 광선을 키운것은 윤택형의 부모가 아닌 윤택형, 본인이었다. 겨우 15살의 나이에 갑자기 생긴 동생이 어색할만도 하건만, 이상하리만치 윤택형은 광선에게 다정했다.

당 시 15살이었던 윤택형은 완벽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소년이었다. 영리하고, 상냥하고, 다정한 소년은 갑자기 생긴 제 동생을 그들의 부모조차 놀랄만큼 철저하게 보호했다. 공부, 인간관계, 의식주, 그 모든 것을 철저히 챙기며 광선을 가르쳤고, 광선 또한 윤택형을 믿고 의지했다. 그들은 완벽한 형제였다.

그러했기에 광선이가 윤택형에게 뭔가 다른 감정을 가지게된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친애의 감정이 동경으로, 동경이 애정으로 변하는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춘기에 들어선 광선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친형처럼 따라왔던 윤택형에게 가지는 감정에 괴로워해야만했고, 늘 힘들어했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광선이 윤택형 외에 믿는 유일한 타인이 바로 나였다. 난 차마 광선이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그런 두명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윤택형은 이상할정도로 광선이에게 집착하곤했다. 광선이가 제 가족들외에 교류를 하는 타인은 내가 유일했고, 윤택형은 나 이외의 타인은 광선이에게 접근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형이 동생을 아끼는 감정, 그 이상이었다.

광 선이는 마치 윤택형을 위해 만들어진, 그런 존재같았다. 그것은 광선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더더욱 두드러졌는데, 광선이의 옷차림 하나 하나- 윤택형의 손길이 닿지않은 것이 없었고, 조그마한 악세서리, 식생활, 좋아하는 취향, 그 모든 것이 윤택형이 좋아하는것과 동일했다. 광선이 자신은 느끼지 못할테지만, 옆에서 보는 내 입장에서는 소름이 끼칠만큼.



"이거 예쁘다!"



광 선이 환히 웃으며 집어드는 옷가지 하나가, 유심히 살피는 악세서리 하나가, 모두 윤택형이 좋아하는 취향- 그 자체라니. 게다가 광선은 그것에 대해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아이일때라면 몰라도, 성인이 되어버린 광선의 스케쥴 하나하나, 귀가시간까지 철저히 체크하는 그 모습은 무서웠다.

나는 윤택형이 무서웠다. 예쁘지만, 마치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유리알같은 눈동자도- 매력적인 외모도- 마치 무기질의 인형과 같아서. 그나마 인간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친구이자 비서라는 승일이라는 남자를 볼 때와 광선이를 보는 순간. 그 뿐이었다.

우연히 승일이라는 남자와 함께 남게 되었을 때, 물었다.



"윤택형은, 광선이를 좋아하는건가요?"
"글쎄요? 다만, 윤택님이 광선군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있는건 분명하지요."



승일이라는 남자의 말에 나는 더욱 불안해졌다. 옆에서 보는 광선이는 안쓰러운 녀석이었다. 그리 철저히 자신에게 맞춰놓은 광선이는, 윤택형을 벗어나지 못할게 분명했다.



"광선이는 윤택형에게 길들여져있어요."
"명훈씨..."
"난, 윤택형이 무서워요. 그리 철저하게 광선이를 제 옆에 묶어두고, 고립시키고. 윤택형이 광선이를 필요로하지 않으면요? 그럼, 광선이는 어떻게 되는거죠?"
"난 모릅니다."



눈 물이 나왔다. 광선이가 안쓰러워서- 너무나 가여워서. 윤택형에 대한 애정을 가진채, 타인과의 교류를 차단당한채 저도 모르는 사슬에 묶인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어려서부터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새는 주인이 있는 집을 자신의 세상이라 여기며, 저도 모르는 새장에 갇혀있었다. 그런 생활이 행복한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윤택형을 봤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며칠을 행복해하는 광선을 보면서, 차마 명훈은 광선에게 어떤 말도 해줄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윤택형이 널 제 품에 가둬뒀다고? 그가 네게 집착하고 있다고? 그 어떤 말도 광선에겐 상처로 남을텐데. 그랬기에 결국 나는 침묵을 택했다.

어쩌면 윤택형이 주는 그 작은 애정에 기대어 살아가는게 광선에겐 나을지도 몰랐다. 그리 철저하게 광선이를 묶어뒀다면, 윤택형은 적어도 광선이를 쉬이 버리지는 않을테니까.


우연히 만난 윤택형은 여전했다. 여전히 주변에 무심했고, 타인에게 냉담했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토록 윤택형을 두려워했음에도 왠지 모를 의무감에 물었다.



"형."
"?"
"광선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택형의 유리알같은 눈동자가 탐색하듯 날 훑어본 후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은 싸늘한 비웃음을 띄운채.



"내가 너에게 그걸 알려줘야하나?"
"전, 광선이의 친구에요. 단 하나뿐인."
"그래서?"
"광선이를 고립시키고, 행동 하나, 취향 하나, 그 모든 것을 형의 뜻대로 만들어놓고. 아마 광선이는 형을 벗어날 수 없겠죠. 왜 그러셨어요?"



내 물음에 윤택형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보통 미소라 불릴만한 그런 행동이지만, 왠지 소름이 돋았다. 무서웠다, 미치도록.



"광선인 내꺼다."
"좋아하세요?"
"글쎄? 그건 중요치않지. 다만, 광선이는 내가 키웠고, 앞으로도 내 옆에서 있을꺼다."



온화한 목소리 속에 감춰진 광끼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이 인간일까? 두려웠다. 인간과 닮았지만, 그는 다른 인간과 틀려보였다.



"광선이... 버리지마세요. 그럼 걔, 무너져버릴테니까."
"호오?"



흥미롭다는 눈이 날 향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쳐버리고 싶었지만, 말해야했다.



"저.. 광선이의 친구니까, 그러면, 형, 용서안해요."
"꽤나 귀엽군. 내 귀여운 강아지의 유일한 친구니까, 이 건방진 모습은 봐주지."



돌아서서 멀어지는 윤택형의 모습을 확인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으십니까?"



옆 에 다가와 부축해주는 승일씨의 팔을 잡으며 나는 내 자신의 무력함에 눈물이 났다. 저 비틀린 남자에게서 광선이는 벗어날 수 없을테지만, 난 광선이의 유일한 친구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난 광선이의 옆에 있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분해요. 윤택형에게 광선이는 아무 의미도 없을텐데."
"윤택님이 그토록 오랫동안 보살펴왔습니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겁니다."
"그러면 좋겠어요."



저 두 사람의 관계는 두 사람만의 것일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광선이의 친구로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섬세하고 착한 내 친구, 광선이가 망가지지 않도록.





제발 광선이가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히 빌었다.

Posted by Lucy_jey
|

바스락-


작게 천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면 녀석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독한 고통이 있을것이 분명한데도 녀석은 그저 얼굴만 일그려뜨릴뿐, 작은 신음하나 흘리지 않았다. 독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저리 만든것은 나임에도.
비부에서 흐르는 끈적함이 불쾌할텐데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그 모양새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아직 힘들텐데?"
"네 놈 옆보단 낫지."



어 디가냐는 그런 식상한 물음따위 던지지 않았다. 내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을 찾나보지? 하지만, 그런건 맘에 들지 않는다. 녀석의 팔을 잡아 거칠게 잡아당겼다. "읏-" 지극히 사내다운 녀석을 넘어뜨려 몸위로 올라가자 녀석이 거칠게 내 손을 떼어냈다.



"뭐, 하는 짓이야."
"오늘, 못간다고 해둬. 안 보낼 생각이니까."
"날 남창으로 아나보지?"



꽤나 사나운 눈이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녀석은 나에게 약하니까.



"나에겐 그렇지."



사 납고 강하던 눈이 절망의 색으로 물드는것은 꽤나 재미있었다. 만족스레 웃으며 티셔츠를 잡자 , 녀석은 한숨을 쉬며 전화를 원했다. 녀석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에 대한 애정이 변질된것은 언제일까? 난 아직 널 사랑하는걸까? 나도, 너도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문제이리라.





[윤택영진] 가시





그저, 친한 친구이던 감정이 변한것은 언제일까?


믿 음직한, 의지가 되는 친구. 언제나 윤택은 영진을 그리 평가했다. 언제부터인지 윤택은 영진이 자신의 옆에 있는것이 당연하다, 그리 생각했다. 편안함이 애정으로 변하는것에 그리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의외로 섬세하고 소녀적인 감성도, 언제나 이성적인 자신보다 훨씬 감정적인 그 모습도, 모두 좋았다. 그랬기에 믿을 수 없었다.


결혼.


머릿속 으로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서로가 결혼을 하게 되어, 누군가의 반려가 될 것임을. 하지만 알고있는것과 그것이 현실이 되는것은 틀렸다. 영진의 옆에 윤택 자신이 아닌 타인이 웃는 그 모습은 상상보다 더 아프고, 괴로웠다. 행복에 휩쌓여 즐겁게 웃는 모습에 질투가 났다.

난 이토록 아프고 괴로운데 너만 행복하다니.

절실했던 애정은 증오로 변했다. 그 마음이 깊었던만큼 깊은 증오였다. 자신의 집에 놀러왔던 영진을 강제로 넘어뜨려 범하던 그 순간, 들었던 죄책감과 자괴감에 미친듯이 괴로워하며 아팠던 것도 잠시였다. 눈만 감으면 울면서 제발 하지말라 애원하던 그 모습이 눈에 비쳐, 자신의 어리석음을 분노했다. 몇일이나 앓으며 나타나지 않던 영진이 나타났을때 윤택은 제 어리석음을 사죄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치 자신과의 일을 없었던 것마냥 구는 영진의 모습은 윤택의 분노를 부추겼다.



"한순간의 그딴 저열한 욕망에 몸을 맡긴거잖아!"



저열한 욕망.

제 자신의 애정이 그딴 것으로 몰릴 수 있음에 윤택은 헛웃음이 났다. 정말 미치도록 사랑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했다. 몸만을 원했던 관계가 아니었다. 그 마음을, 상냥한 그 마음의 한 조각이라도 얻고 싶었는데, 그것이 그리 몰리자 윤택은 더이상의 죄책감도, 자괴감도 모두 덮었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쉬웠다. 원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니까. 울부짖으며, 증오와 분노를 쏟아내는 영진을 강제로 탐하고, 그 모습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내가 저열한 욕망에 사로잡힌 강간범이면, 넌 창부나 마찬가지지. 더 탐해지고 싶어서 찾아온 비천한 남창. 제수씨는 이걸 알까몰라?"



자 신이 얼마나 비겁하게 타락할 수 있는지, 윤택은 끔찍스러운 기분이었다. 동시에 이렇게라도 영진을 가지고 싶은 자신이 과연 영진을 사랑한다,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그것만은 안된다며 애원하는 영진을 보며, 윤택은 비웃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혐오였고, 영진을 향한 동정이었다. 그렇게 저열하게 영진을 제 손에 넣은 그 날, 예전의 성실하고 착했던- 이영진을 사랑했던 임윤택은 죽었다. 적어도 윤택은 그리 생각했다.

종종 영진을 탐했다. 남자의 몸이란 성가시다. 마음이 없어도 몸은 흥분하고, 쾌락을 느끼는 가련한 생명체. 영진또한 마찬가지라 아내를 배반하는 배덕감에 괴로워 번민하면서도, 쾌락에 굴복했다. 허덕이며 최대한 억누른 신음성에는 영진 , 자신도 알만큼 쾌락이 배여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비웃는 윤택을 쏘아붙이면서도 영진은 익숙해져갔다.



"어디가 그렇게 좋아?"



정사가 끝난후 느른하게 늘어진 영진에게 물었다. 오늘은 두번이나 겪은 절정탓인지 완전히 늘어진 영진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영진은 느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지. 그냥 어느순간 눈이 가는 여자였으니까."
"그래."




짧은 문답이 끝나고 영진의 옆에 누운 윤택의 가는 팔이 허리를 감아왔다. 윤택또한 꽤나 지쳤던 듯, 잠시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영진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윤택을 바라봤다.


왜 그 여자였는가?


윤택에게 건넨 답은 거짓이었다. 영진은 조심히 손을 들어 윤택의 손을 메만졌다. 가늘지만, 남자다운 손.



"널 닮았어."



결코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그를 닮았다. 임윤택을.

윤 택은 알지 못할 긴 시간동안 그를 좋아해왔다. 처음 만난 그 순간에 반해버렸고, 그랬기에 윤택의 옆에 있었다. 가장 좋은 친구로. 하지만 이어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녀를 택했다. 윤택처럼 작지만 강단있고, 상냥하면서 다정한 그녀를.

그 뒤 알았다. 윤택의 애정을. 강제로 범해지면서, 깨달은 그 감정은 괴롭고 아팠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아니, 차라리 아예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 옆에는 그녀가 있었으니까.

이 런식으로 윤택과 이어지는 것이 옳지않음을 안다. 서로에게 깊은 애정이 있기에, 그 감정이 가시가 되어 서로를 상처입는 이런 관계가 어떤 파국을 몰고올지도. 하지만 영진은 제 의지로 윤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애정이 너무 깊었다.

그랬기에 영진은 그저 눈을 감았다. 결코 내뱉을 수 없는 단어를 삼키며.





사랑해.

Posted by Lucy_jey
|

광선은 늘 혼자였다. 10살때 부모님이 화재로 돌아가시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생활을 하던 광선은 타인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몇몇 있던 친구들도 어떤 이유에선지 사라져버리고, 그 뒤론 혼자서 외로움에 몸부림쳐야했다. 그래서 그를 만난것은 행운이라, 그리 생각했다.




[광선명훈광선] 고독




"광선.. 이지?"



조심스레 물어오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너무나 오랫만에 타인의 입에서 불리운 이름은, 낯설었다. 광선이 고개를 돌린곳에는 짧은 갈색 머리칼에 눈웃음이 예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누... 구..?"
"기억 못하는거야? 나 명훈이형이야. 김명훈."



기억하지 못하는 광선을 보며 화사하게 웃는 그 모습은 조금 낯이 익었다. 자신보다 7살 연상이던 그는 기억처럼 순진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같은 티없는 미소를.



"명훈,, 형?"
"반갑다, 박광선."



해사하게 웃으며 절 껴안는 명훈의 행동에 순간 광선의 몸이 굳었다. 작고 외소한 체형의 명훈은 놀랄만큼 따뜻하고 상냥했다.

두근-

부 모님이 돌아가신 후 10년이 넘도록 접하지 못했던 온기를 접해 놀라서였을까?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광선은 힘들게 웃으며 명훈을 보며 마주 웃었다. 너무 오랫만에 웃는터라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던듯. 명훈은 광선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어보였다.




---




계속 붙어다니던 명훈에게 광선이 특별한 감정을 가진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릴적부터 너무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광선에게 명훈은 그야말로 빛이고, 희망이었다. 놀랄만큼 자신을 감싸안으며, 자신의 일에 제 일마냥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다정함은 눈물이 날만큼 따뜻했다. 어느샌가 광선은 그를 잃는다는 것에 대해, 그가 제 곁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지도 못하게 되어버릴만큼.

그 랬기에 광선은 종종 명훈에게서 느껴지는 비릿한 내음을 그저 무시했다. 놀랄만큼 차가운 눈동자를 한 채, 서늘한 밤공기를 휘감고, 비릿한 내음을 풍기는 명훈을 그저 모른척, 그리 행동했다. 그런다면 명훈과 오랫동안 있을 수 있을테니까.

그 위태로운 평화는 얼마가지 못했다.



"박광선씨 되십니까?"



자신을 찾아온 형사, 임윤택이란 남자의 말은 광선의 불안이 현실이 되어버린 경우였다.
살인자. 추정되는 숫자만 5명을 넘길만큼 잔혹한, 연쇄 살인마.
그게 명훈이라, 그는 그리 말했다. 믿고싶지 않다는 표시를 절절히 보이는 광선의 모습에 윤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자에게 속아 넘어가 친절하다고 믿고계셨다니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박광선씨. 명심하세요. 그는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고통을 준 인물이라는것을 알아두세요."



그의 재판이 끝날때까지 광선은 명훈을 찾아가지 못했다. 두렵고 , 슬프고, 괴로웠다. 다시 혼자라고 생각하면- 온몸이 떨렸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간 면회에서, 명훈의 모습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상냥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광선을 반겼다. 여전히 아이같은 순진함으로.



"얼굴이 말이 아니야. 잘 지내야지, 응? 우리 광선이."
"형.."



그는 맑게 웃으며, 광선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그리곤 아무렇지않게, 속삭였다.



"광선아. 내가 네 부모님을 죽였어."
"?!"
" 난 네가 어릴때부터 너무 좋았거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웃는게 싫었어. 그래서 죽였어. 네 웃음을 볼 사람은 나 뿐이니까. 학교에서 네게 친구가 생기면, 내가 몰래 협박해서 멀어지게 만들었어. 네가 타인과 말을 섞는것도 싫었으니까."



명훈은 충격으로 굳어진 광선을 바라보며 순진하게- 하지만 잔혹하게 웃어보였다.



"네가 원망하든, 미워하든, 그건 상관없어. 난 네가 나 이외의 사람에게서 행복해지는게 싫으니까. 넌 평생 날 기억하고, 날 생각해야해. 그게 어떤 감정이라도 상관없어."



명훈은 달콤하게 웃으며 광선의 목에 팔을 감아,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 옆이 아니라면, 넌 행복해지면 안되, 광선아."

Posted by Lucy_jey
|

옛날에 어느 왕국에 아름다운 공주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공주님에게 한눈에 반한 마왕이 그 공주님을 납치했습니다. 공주님은 두려움에 떨며, 매일을 눈물로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용기 있고, 멋진 용사가 마왕성을 찾았습니다. 몇날며칠이나 되는 길고, 지루한 사투 끝에 용사는 마왕을 물리치고, 가련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을 구해냈습니다. 멋지고 훌륭하게 마왕을 쓰러뜨리는 용사의 모습에 공주님은 한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공주님과 용사는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승일명훈] 용사와 마왕님





"어머? 요새도 그런 재미없는 책을 읽니?"


한참 어린 아이 계집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소녀의 모습에 한 여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갔다. 살짝 가려진 옷깃사이로 보이는 검은 장미 문양의 브로치를 한. 그 모습에 소녀가 눈을 반짝였다.


"검은 장미회?"
"그래. 언제나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남자들의 은밀한 사랑을 응원하는 검은 장미를 위한 모임. 그런 재미없는 책보다, 훨~ 씬~ 좋은 책을 소개해줄게. 후후."


여인은 환히 웃으며-동시에 어딘가 어두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지닌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내들었다. 표지에 검은 장미가 하나 그려진 책의 표지에는 「어린 장미를 위한, 용사와 마왕님 by. 검은 장미회」라고 적혀있었다.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니까 들어두렴. 후후후."




「어 느 나라에 한 공주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이었지만, 성격이 드세고 왈가닥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답답한 궁정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쪽지 한 장을 남겨둔 채-아름다운 미소년을 찾으러 갑니다.-,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공주님의 기행에 이미 질려버린 왕께서는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지요.

가출한 공주님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둠의 숲이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답니다. 그곳에는 마족들이 살고 있었지요. 자신들이 할 일에 바쁜 마족들의 모습을 외면한 공주님은,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답니다. 그곳에는 아주 훌륭한 저택이 하나 있었어요. 슬쩍 둘려보던 공주님은 그곳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왕님을 발견했답니다.

이 마왕님으로 말하자면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고, 아직 미성년의 나이로 마왕에 취임. 그 이후 현명하고, 멋진 정치로 모든 마족들의 사랑을 받는, 마족들의 아이돌이었답니다.」




"잠시! 왈가닥 공주님에, 마족들의 아이돌 마왕님?"
"정말로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찬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마왕님이란다."
"근데 왜 마왕성이 아니라, 저택이에요?"
"마왕성은 너무 커서, 청소하기 힘들다고, 상냥하게 그냥 저택으로 바꾸셨단다."
"""""착하다~"""""




「공 주님은 그토록 찾고 바라던 인물이 마왕님이라는 것을 알자, 공주님은 저택으로 쳐들어갔답니다. 마왕님은 갑자기 자신의 저택에 찾아와 귀찮게 구는 공주님-"완전 내 취향. 체구도 작고, 여리여리한게 천성적인 수타입." "너 가라." "아앗! 이런 앙탈이라니!! 앙탈수도 좋잖아?" "귀찮거든. 제발 좀 가라. 응?" "이런 타입을 깔만한 멋진 공을 소개해줘야 하는데... 누가 좋을까?"-에게 짜증이 났지만, 쫓아도 가지 않는 바람에 결국 포기해버리셨지요.

공주님은 승리감에 웃으며, 아버지인 왕국의 왕에게 편지-아버지, 저 어둠의 숲에 있는데, 잘생긴 남자 하나만 보내줘요. 안 그럼 안돌아가요.-를 보냈습니다. 왕께서는 철없는 공주님 덕에 뒷골을 잡으면서, 왕국 최고의 검사인 승일이라는 기사에게 공주를 찾아올 것을 명령-어둠의 숲에 가서, 말괄량이 좀 데려와주겠나? 당장에 오면, 용돈 50%삭감. 만약 안 오려고 한다면, 앞으로 용돈은 없다고, 반드시!! 전해주게.-했어요. 덕분에 용사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야만했지요.

어둠의 숲으로 들어서자 마족들은 싸움한번 하지 않고, 용사를 응원하면서-"우리의 마왕님 좀 구원해주세요." "그대는 마족의 희망!!" "그 여자는 공주가 아니라 흉신악살의 마녀. 제발 마녀를 물리치고, 마왕님께 평화를~!!"- 길을 비켜줬답니다.」




빠직-

여인은 책을 읽다말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소 짓는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중얼거렸다.


"대체 공주님은 어떤 분이셨기에, 마녀라고 하는 거지?"
"아주 아름답고, 상냥한 분이셨어. 공주님을 시기한 녀석들-뿌드득-이 모함한 거란다."
"우웅..."
"어느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두고 보자."


여인은 아주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책을 들었다.




「저 택 앞에 다가온 용사는 데모 중인 마족들-"마녀는 마왕님을 풀어달라!!" "마녀에게 잡힌 마왕님을 구하자." "마왕님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라!!!"-을 지나치며-"용사여. 마왕님을 구해주게" "마왕님을 구원할 사람은 그대뿐이야!!" "마녀에게서 가녀리고(?) 연약한(??) 마왕님을 구출할 기회를 주겠네. 부탁하지"- 용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토록 마족에게 사랑받는 마왕님이 궁금해졌기 때문이었죠.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족들의 친절하고 상냥한 안내를 받으며, 마왕 집무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용사는 말을 잃고 말았죠.

새 카만 흑발과 동그란 눈동자의 마왕은 그 외모도 용사의 취향이었지만, 용사의 등장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젖히다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눈웃음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용사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답니다. 세상에, 수염을 기른 남자가 사랑스럽다는 생각마저 들다니. 용사는 자신을 믿을 수 없었지요. 마왕님의 옆에서 공주님이 마왕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이 왠지, 아주 불쾌해질 만큼 마왕님은 용사의 맘에 꼭 들었답니다.」




"용사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용사는 검만 보고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난거야."


다정하게 답해주는 여인의 표정은 그야말로 흉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차마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열을 낼 수 없는 만큼, 간신히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후우... 자, 다시 읽어줄게."




「"당신이 용사? 제발 이 거머리 공주 좀 데려가라, 응?"

뚱하니 잔뜩 지친얼굴로 말하는 마왕의 모습이 귀엽다라고 생각된 용사 승일이 그에게 다가가 팔을 쥐었습니다. 옆에서 공주가 묘하게 눈을 반짝이는 것 같지만, 그냥 무시하고.

"마왕. 당신은 이름이 뭐지?"
"그, 그건 알아서 뭐하게?"

왠지 이 녀석, 공주와 비슷한 과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마왕님이 당황스럽게 물었습니다. 그 목소리마저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용사는 화사한- 하지만 어딘지 어두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궁금해서. 난 승일. 박승일."
"김... 명훈인데."

왠지 그런 마왕의 모습에 용사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려다가 잠시 멈춰서서 공주님을 응시했습니다.

"공주님. 폐하께서 당장 돌아오면 용돈 50%, 아니면 아예 용돈을 끊겠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쪼잔한!!"

공주님이 당황하면서 화내는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용사는 마왕님에게 다가가 살짝 턱을 들어올렸습니다.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흔들리는 마왕님의 눈동자를 보며 용사는 마왕님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습니다.

찰칵- 찰칵-

어디선가-실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촬영소리가 들렸지만 용사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지요. 당황과 부끄러움에 빨갛게 변해버린 마왕님을 보면서, 용사는 다정하게 웃었습니다.

"이름도 귀엽네. 내가 평생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왠지 능글능글하게 웃는 모습이 용사같지 않았지만, 처음 듣는 고백에-마족들은 착하고 소심한터라 마왕님 앞에서 고백한적이 없다더군요.- 마왕님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셨답니다.

그 후 마왕님과 용사는 행복하게 잘 살고있답니다.

그리고 마족들요? 마족들은 자신들이 늑대-용사-에게 양-마왕님-을 던져줬다면서, 몇날며칠을 울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귀엽고 사랑스럽던 마왕님이 색기를 풍기자, 아주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여인이 서로 입술을 맞댄 두 남자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남자들임에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모습에 왠지 붉어진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마친 여인은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이 뒷이야기는, 검은 장미회에 가입한다면 열람가능하답니다. 영상과 사진 또한."
"시, 실화인가요?"
"어머? 당연하지. 이 사진보면 모르겠니? 우리 검은 장미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다. 후후후."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여인을 보면서 아이들이 반드시 검은 장미회에 가입하겠노라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여인은..




"후후. 전도 완료. 전 대륙에 우리 검은 장미회의 명성(?)이 퍼지는 날까지 힘내야지. 그나저나, 이 이야기, 누가 적었는지, 걸리기만 해봐라. 내가 흉신악살의 마녀라니. 어디서 그런 누명을!!"

Posted by Lucy_jey
|




승무제(承懋帝) 15년 봄


“시끄럽군요.”


무심히 의자에 앉아있던 소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이 천추국(天樞國)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위대한 피를 이어받아 올해 11살이 된 제 1황자인 청황자(淸皇子) 임윤택이었다. 그 소년의 앞에 앉은 이는 윤택의 외숙(外叔)인 좌찬성 박진문과 그의 아들이자 윤택의 최측근인 승일이었다.


“어쨌든 황가의 피가 섞이진 않았다해도, 그는 황가의 일원이라 인정받았습니다. 그런 이가 7년 만에 들어오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지요. 게다가..”
“게다가 담현대군(潭玄大君)이 국무(國巫)의 계승자이기 때문입니까? 좌찬성대감.”


좌찬성인 박진문은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급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보이는 것은 순백의 무복을 입은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었다.


“이거, 신녀(神女)께서 들으신게요.”
“갑작스레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청황자마마.”
“아닙니다, 신녀. 앉으시지요.”


윤택은 당황한 기색을 최대한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의자를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그에게 권해진 곳에 앉았다.


“담현대군께서는 결코 황자마마께 해가 될 분은 아니실겁니다. 아니면, 국무의 도움 없이는 그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십니까?”
“신녀! 말이 지나치십니다.”
“대감께서도 알아두셔야지요. 황자저하를 걱정시키는 것이 그대의 일입니까?”
“외숙도 절 걱정하여 하시는겁니다, 신녀. 노여움을 거두시구려. 중요한 것은 신녀가 이대로 물러나는 것이 맞는가, 이것이 아니겠소?”


날카롭게 반문하는 그 모습에 윤택이 약간 강한 어조로 신녀를 향해 물었다. 그 말에 신녀는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은채 윤택을 바라봤다. 시선조차 피하지 않는 그 강인한 모습에 윤택이 잠시 멈칫하자, 신녀의 눈초리가 곱게 휘어졌다.


“담 현대군께서는 저보다 훨씬 강하고, 좋은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하시진 않으실 테지만, 그래도 원망치는 마옵소서. 너무나 착하고, 고운 분이십니다. 저 같은 천녀(賤女)보다 훨씬 좋은 국무가 되실겁니다.”
“신녀의 그 말이, 조금 안심되는구려.”



*



“오늘, 궁으로 입궁하신다하시더니 떨리십니까?”
“안 떨린다면 거짓이겠지. 내, 고작해야 9살 아니더냐. 그러는 광선이 너는 전혀 떨리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저라고 어찌 아니떨리겠습니까? 다만, 저마저 떨면 명훈님을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광 선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명훈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저보다 1살 더 작은 나이이거늘, 광선은 마치 제 형마냥 굴곤했다. 그런 광선의 행동이 명훈은 늘 기뻤다. 궁궐로 들어간다. 수많은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피한다고 피해질 운명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 뛰어난 명훈은 알고 있었다. 이럴때는 자신이 신을 모시는 무인(巫人)인것이 끔찍스럽게도 싫었다.


“담현대군마마. 궐로 입궐하실 때이시옵니다.”
“알겠네. 가자, 광선아. 이제 궐로 간다면, 난 내 이름보다 국무라는 호칭으로 불리겠지. 싫구나.”
“제가 명훈님의 이름을 불러드리겠습니다.”
“고맙다.”


명훈은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 눈을 감았다. 별은 제 운명의 상대가 궐에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허나, 신을 모시는 무인에게 운명의 상대라니.


“신의 뜻이란, 참으로 알기 어렵구나.”



*



“궐로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담현대군. 앞으로 그대가 이 천추국의 국무의 계승자로서 맡은바 임무를 다해주길 바라네.”
“네, 황제폐하.”
“앞으로 그대는 천신궁(天神宮 : 천추국의 황궁에 위치한 국무와 신녀의 처소. 황족조차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성역.)에서 거하도록 명한다.”


윤 택은 새하얀 옷을 입은 채 가만히 눈을 내리깐 소년을 바라봤다. 9살이라 듣긴 했지만, 참으로 어렸다. 저런 어린 아이에게 국무의 계승자라는 묵직한 직책을 수여하다니. 말이 계승자지, 고작해야 1~2년 상간에 저 아이가 국무가 될 것이 뻔했다. 신녀 또한 국무의 계승자라는 칭호를 받은 직후 3년 만에 계승한 터였다. 그것도 이례적으로 늦었다고 불리면서.
약간 창백하다 싶은 얼굴과 반대로 생기가 넘치는 눈동자가 잠시 윤택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랬기에 윤택은 조심스레 황제의 왼쪽을 응시했다. 황제보다 약간은 낮은 자리에 그 여자가 있었다. 새로이 국무가 된, 담현대군의 친모이자, 천추국의 2번째 황자인 진황자(進皇子) 임수언의 어미인 3황비가.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제 6살 된 진황자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고 보면, 담현대군은 고작해야 3살 때 제 아비를 잃고, 1년 만에 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무가(巫家)로 쫓겨나 버린 건가. 게다가 그 후 1년 만에 어미가 사별한 제 아비를 잊고, 황상의 비로 들어가 버리다니. 어찌 보면 안쓰러운 운명이로군.’


하지만, 안쓰러운 것은 안쓰러운 것이고, 윤택으로서는 저자가 택할 길이 걱정스러웠다. 신녀의 말대로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지만, 혹여 제 어미나 이부동생인 진황자의 편을 들어버리면 곤란해질 터였다.


‘확실히, 해두는 쪽이 좋긴 하지만...’


국무에게 함부로 접근하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안 될 터였다.


‘우선은, 두고 볼까...’

Posted by Lucy_jey
|

"미안해."





잔뜩 쉰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힘없이 쳐진 목소리가 아닌, 강한 힘이 내재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렸다. 계속해서 흐려지는 눈을 닦아내며 단 한순간이라도 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 명훈을 보며 윤택이 힘들게 손을 뻗었다.





"사랑해,, 정말, 널,,, 사랑,,, 해,,,,"





삐-



힘겹게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점점 느려지더니 툭- 떨어져내렸다. 급박하게 쥔 손은 점점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혀, 형.. 형? 윤택형.. 형, 정신 차려봐요.. 형. 형!!!"





급박하게 너스콜을 누르자 달려온 간호사는 당황하며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먹먹하고, 당장이라도 심장이 부서질것마냥 지독히 아팠다.


사랑. 형이 말하던 사랑. 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픈 기분이 사랑이려면, 나는 형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잠시 병실을 비웠던 윤택의 부모님과 승일, 광선이 급박하게 달려왔다. 더이상 그래프를 그리지않는 기계의 차가운 소리에, 윤택의 손을 잡은채 꺽꺽거리며 우는 명훈의 모습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이별이었다.






[윤택명훈] 시간을 걷다 01






"으..."





간신히 정신이 든 명훈은 아무도 없자 두려움에 파르르 떨었다.





"승일, 형? 광선아... 다, 어디,, ,어디, 있어...?"





좁고 더러운 단칸방에 널린 옷가지 몇 개와 손때묻은 악기 몇 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모습에 명훈의 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흐으 , 흑.. 혀, 형... 광선아... 으흑,"





달칵-


몸을 잔뜩 웅크린채 울먹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들려오는 명훈의 울음소리에 급박하게 달려온 것은 승일이었다. 비닐봉지는 한곳에 내팽겨쳐둔채 명훈을 끌어안은 승일이 속삭였다.





"명훈아. 명훈아? 형, 여기있어. 광선이도 곧 올꺼야."
"흐, 혀, .. 혀엉... 으흐..."





윤 택의 죽음이후 폐쇠된 공간과 병원, 어둠과 아무도 없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 명훈을 잠시라곤해도 홀로 놔둔 자신이 바보같았다, 한숨쉰 승일이 두려움에 떨다 기절하듯 잠든 명훈을 옆에 고이 뉘었다. 승일의 허벅지를 벤 채 잠이든 명훈을 응시하던 승일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녀왔, 어?"
"왔냐? 명훈이, 깨서 떨고있더라."
"한명은 남아있을걸.. 잘못했네요."





승일의 말에 낮게 한숨을 내쉰 광선이 식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정리한 뒤 승일의 옆에 다가왔다.





"어디, 공연갈만한 곳 없어요?"
"글쎄.. 찾아봐야지. 힘드네."





그토록 사랑하고, 원하고, 바란 음악이었지만 그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그것은 윤택의 죽음 이후 더했는데, 그야말로 하루벌어 하루 먹고산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정도였다.





"정말.. 힘들다..."





광선은 승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이번에 광주에서 공연이 생겼어."
"광주요?"
"괜찮은 곳이야. 어때?"
"찬성!"





승일의 말에 명훈이 제일 먼저 웃으며 찬성을 표했다. 자신때문에 승일과 광선을 힘들게 하고싶진 않았고, 어떻게해서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광선이, 넌?"
"저도 괜찮은것같아요."
"그럼 결정. 오늘 저녁에 가야되니까 준비해."





이것으로 다시 힘을 내자.


승일은 그리 생각하며 웃었다.



힘들어도 우린 함께니까, 괜찮을테니까.






---






빠앙-



귓가를 어지럽히는 시끄러운 소리. 매캐하게 고무가 타는 냄새. 시야를 가득 메우는 불빛.


그것이 명훈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어두운 밤, 광주의 공연을 위해 내려가던 그들을 덮친 거대한 트럭. 그들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채 도로에서 가드레일 밑으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모든것을 잃었다.





진짜, 지독히도 억울하고 원통했다.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었다.







*



*









그리고,





"명훈아? 왜 그래?"
"뭐, 나쁜 꿈이라도 꾼거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윤택과 승일, 광선을 보고 명훈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Posted by Lucy_j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