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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비... 어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갈색의 흐트러진 머리칼. 가늘게 떨리는 가련하고-  또 잔악한.

그럴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새어나온 이름은, 결코 지워질리 없는- 뇌리에 새겨진 것이었다.

 

약하게 떨리는 제 음성을 어찌 생각한 것인지, 그는 그 얼굴에 옅고, 가는 웃음을 띄워올렸다.

 

"Reid."

 

그 입에서 나온 이름이 낯설어, 그저 눈을 감았다.

 

-

 

"Reid- Reid!!"

 

간신히 눈을 떳을때 보인 것은, 하치였다.

 

"하치?"

"악몽이라도 꿨나?"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듯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조심히, 이마를 쓸어내렸다. 손에 흠뻑 젖어 나오는 액체가 , 당혹스러웠다.

 

"고민이 있다면, 말해."

"네."

 

간신히 답했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것은, 리드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

 

"흐으- 으.."

 

낮게 들려오는 신음성에 다가가자, 쇼파에 몸을 웅크린채 잠든 리드가 있었다. 땀에 젖은 갈색 머리칼이 안쓰러워 조심히 손을 뻗자, 리드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몽롱한 시선이 잠시, 허공을 배회하다가, 멈췄다.

 

"토.. 비...어스..."

 

가늘게, 끊어질듯 이어진 이름은, 과거 그를 가두었고, 그의 맘에 가장 깊은 상처로 남은 자의 이름이었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만큼 지독한 상처로 남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리드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Reid."

 

낮게 불리워진 제 이름에 눈을 감는 리드를 보며,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잠에서 깬 리드에게 아무렇지 않게 묻자, 멈치하면서도 결코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스펜서 리드는, 토비어스 행클에게 구속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는것을, 깨다는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영리한 이- 스펜서 리드는, 이미 죽은 자인 토비어스 행클에게 구속되어 있었다.

 

 

 

-

 

리드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고, 가장 큰 의미로 와닿은 것은, 어떤 의미로는 토비어스 행클, 그 이상의 인물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어있는 토비어스에게 정신적으로 구속된 리드와, 그런 리드의 모습에 속끓이는 하치라는, 생각.




2012.04.19

Posted by Lucy_jey
|

가느다란 손가락이 예쁘다, 그리 생각했다.

 

 

[하치리드] hand

 

 

무엇이 불안한 것인지, 옷깃을 그러쥔 손이 하얗게 도드라져 보였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의 도드라진 마디, 마디가 사랑스러웠다.

 

"Dr. 리드"

 

그제서야 간신히 리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나이에 맞지않는 순진함이 깃든,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비치는 제 모습이, 약간 낯설었다.

 

"...하치."

 

간신히 , 이어진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스러질것같으면서, 리드는 웃고있었다. 아주 옅지만, 아름다운 미소. 조심히 손을 들어 , 그의 머리칼로 가져가다가, 흠칫- 손을 떼어냈다.

 

"?"

"혼자, 힘들어하지마라."

 

그의 말에 리드는 , 방금전같이 투명하고 덧없는 웃음이 아닌, 진실된 웃음을 지었다. 순진하고, 상냥하고, 따스한.

 

"Yes."

 

 

==



2012.04.10

Posted by Lucy_jey
|

 


'우리, 더 이상 서로 상처는 주지 말자.'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에요, 선배?’



나 의 말을 알아들었음에도, 모르는 척 물어오는 창백한 얼굴을 응시했다. 원래 흰 편이기는 했지만, 저리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모습에 순간 울컥해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3년간 사귀어온 나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었기에.



‘알아들었잖아.’

‘나는, 그런 식으론 못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확실히, 확실히 말하세요.’

‘헤어지자.’



순 간 몸이 휘청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 순간 손이 움찔하지만, 결국 앞으로 뻗어내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제 자신을 추슬러 다시금 몸을 세운다. 그래, 쉬이 쓰러질 연인은 아니었다. 제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할 정도로 자존심강한 아이였다.



‘정말, 마음이 떠난거구나.’

‘...’

‘그래, 그동안 고마웠어요, 쇼 선배. 아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사쿠라이 선배.’



복 받쳐오는 울음을 참는 듯 잠긴 너의 목소리에,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부르는 낯설어진 호칭에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아니라고,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아이는 천천히 인사를 한 뒤 꼿꼿이 몸을 돌려 당당히 내 눈앞에서 멀어져갔다. 결코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을 아이는, 마지막까지 도도했다.


남은 한 달의 기간 동안 나와 아이는 서로를 본체만체했고, 방학이 지나 2학기가 개강했을 무렵 나는 아이가 학교를 휴학했음을 알게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그 말처럼, 그렇게 나는 3년의 연애에 끝을 고했다.





[사쿠쥰] 다시 한 번





“사쿠라이상-!”

“네.”



졸 업 후 취직한 T출판사에서 올해로 2년 차. 처음의 허둥허둥 거리며 혼란에 빠져있던 풋내기 편집자는 그 새 그럭저럭 능력 있다고 칭해지는 편집자로 통하고 있었다. 꽤나 잘생긴 외모에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한 사쿠라이에 대한 평판은 사내에서 칭찬이 줄을 이었고,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원고를 쉽사리 넘기지 않는 작가들에게서 원고를 받아내는 솜씨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런 사쿠라이이기에 편집장이 사쿠라이를 저리 불러대는 것은 아마 속 썩이는 작가 때문일 것이라, 사쿠라이의 뒷모습을 보며 편집부의 사람들은 그리 수군수군 거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추측은 정확했다.



“사쿠라이상. 혹시 작가 ‘J’에 대해 알고있나?”

“네.”



J.


필 명 외에는 외모도, 이름도, 나이도, 그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진 작가. 3년 전 처음으로 낸 소설이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지금에 와서는 그 어딘가 담담하면서 직관적인 필체에 수많은 팬을 보유한 인기 작가였다. 현재는 T출판사 소속 잡지에 2주에 한 번, 소설을 적어내는 중이었다. 편집부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것에 대해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인물. 혹여 실존인물이 아닌 것은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를 직접 담당한 담당편집가가 분명히 실존인물이라 얘기한터라 그저 편집부내에서도 도시전설 아닌 도시전설 화 되어있는 신비의 존재였다.


그 가 그리도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가 처음 T출판사와 계약을 맺을 때, 혹시나 자신에 관한 어떤 사실이라도 발설 될 경우 당장에 소설을 모두 중단함과 동시에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 확실하게 명시한 탓이었다. 워낙에 독특한 계약이라 편집부내에도 꽤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고, 2년 전에 입사한 사쿠라이도 그 계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J의 전담 편집가는 사토 메이상이었네만...”



말끝을 흐리는 편집장의 어조에 사쿠라이는 이해해버렸다.


사토 메이. 편집부내의 베테랑이자, 능력 있는 편집자인 그녀는 임신 중이었고, 이번에 출산휴가를 들어갈 예정이었다.



“자 네도 알다시피 사토상이 출산휴가를 들어가게 되었네. 사토상이 담당하던 작가가 한, 두명이 아니라 다른 편집자들에게 지금 일이 나눠지고 있는 중이라네. 그러니 부디 자네가 J의 편집자로서 들어가주겠나? 정 불편하다면 6개월정도의 기간만이라도 부탁하네.”



6개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뭐, 상관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사쿠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고맙네, 사쿠라이상.”

"아닙니다. 어려울 때 도와야지요."



사쿠라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숙였다.




***




“여기야, 사쿠라이군.”



사 토 메이와 함께 첫 인사를 하기 위해 온 사쿠라이는 사토의 말에 저도 모르게 눈 앞에 놓인 맨션을 바라봤다. 인기작가라 그런지, J의 숙소는 그럭저럭 좋은 집안 출신인 사쿠라이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유명한 고급주택가들이 즐비한 곳에 위치한, 언 듯 보기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맨션이었다.



“작가가 이렇게 수입이 좋은 직업이었나.”

“왜, 주눅이라도 드는거야? 나도 처음에야 그랬지. 그래도 J는 좋은 사람이야. 자, 어서 가자.”



당 황스러움에 절로 위축되는 사쿠라이를 보며 상냥하게 웃어 보인 사토는 익숙하게 J가 사는 집으로 그를 끌고 올라갔다. 깨끗하게 칠해진 흰 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눌러버린 사토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사쿠라이였으나, 그녀는 그저 쾌활하게 웃을 뿐이었다.


딩동- 딩동-


-네, 누구세요.


잠 시의 시간이 지나고 초인종 속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조금 낮은 남자의 목소리에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사쿠라이는 저도 모르게 스피커를 응시했다. 이미 잊었다 생각했지만, 듣는 순간 지독하게 그리워지는 목소리는, 그에게 익숙했다. 그런 사쿠라이를 눈치채지 못한 사토는 그저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쥰군. 나야, 메이.”


-오늘은 약속일이 아닌데? 어쨌든 들어오세요.



조금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골몰하던 남자는 곧이어 아무렇지 않은 듯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위치한 두 사람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3년의 시간동안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러나 이제는 아픔으로만 남은 그의 첫사랑이 눈앞에 편집자로 서있는 모습은 남자를, 마츠모토 쥰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왜 그래, 쥰군?”

“..아니요. 들어오세요, 메이상.”



순간 어지러워지는 시야를 바로잡으며, 마츠모토는 약한 모습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따끔해지는 고통에 간신히 제 모습을 유지한 마츠모토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집으로 들어섰다.


집 은 단정했다. 적절한 위치에 적절하게 배치한, 반드시 비싸지는 않더라도 풍광에 어울리는 좋은 가구와 깨끗하게 청소되어있는 깔끔한 집안. 하지만, 어딘가 사람이 사는 따스함이 없는 살풍경한 느낌의 집에서 유일하게 정리되지 못한 책상만이 그곳이 사람이 사는 곳임을 짐작케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



거실에 위치한 쇼파에 앉은 사쿠라이와 사토의 모습에 가벼운 음료를 가져온 뒤 맞은편에 앉은 마츠모토는 사쿠라이의 시선을 피한 채 사토를 바라봤다. 혼란스러웠다.



“약속일이 아닌데 어쩐 일이세요? 또... 저 분은.”

“쥰 군도 알다시피 내가 임신중이잖아. 이제 출산휴가도 들어가야 하고해서, 편집자가 바뀌게 될 거야. 그런 의미에서 여기는 새로운 편집자인 사쿠라이 쇼군. 쇼군, 이쪽이 작가 J. 본명은 마츠모토 쥰. 자, 낯설겠지만, 서로 인사 나누도록 해.”



잠시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것은 마츠모토였다. 아직도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마츠모토는 이성적인 인간이었다.



“오랫만, 이네요. 사쿠라이 선배.”



조금은 담담하게, 냉정하게 말해진 마츠모토의 인사에 순간 가슴에 욱씬거리는 통증을 느낀 사쿠라이였지만, 그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오랫만이네, 마츠모토군.”

“어머, 서로 아는 사이야?”

““대학 때, 후배(선배)에요.”“



동시에 발해진 말에 서로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쿠라이와 마츠모토의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챈 사토는 이런 복잡한 관계에 억지로 끼어들 필요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지나친 참견은 없느니만 못한 법이었다.



“두 사람, 얘기가 많을텐데 내가 비켜줄게.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사쿠라이군, 쥰군. 당분간은 보기 힘들겠네.”

“...가시려고요?”



당황하며 일어서는 마츠모토의 모습에 웃으며 가볍게 포옹한 사토가 작게 속삭였다.



“두 사람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할 말이 많아 보이니까.”

“그럼 건강해, 쥰군. 사쿠라이군도 내 대신 부탁해요.”

“아, 네.”



역 시나 연륜은 속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토를 배웅한 마츠모토는 순간 무겁게 가라앉은 집안의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나쁜 버릇임에는 알고 있으나, 생각이 많아지고- 혼란스러울 때면 저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런 마츠모토의 버릇을 아는 사쿠라이는 전혀 변하지 않는 마츠모토의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 얼마의 시간이 지났어도, 마츠모토는 마츠모토였다.



“작가 J가 쥰, 너인 줄은 몰랐어.”

“3년 전, 선배와 헤어지기 직전에 소설을 공모전에 냈었어요. 선배와 헤어진 뒤에 그 소설이 공모전에 합격한걸 알았고.”



담담하게 어조의 마츠모토였지만, 차마 사쿠라이를 직시할 수는 없는 모양인지 눈을 내리깐 채 조근조근 대답했다. 그 모습조차 너무나 그리운 과거, 그 자체라 사쿠라이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난 아직도 너의 사소한 버릇조차 잊지못했는데, 너는 어떤지, 묻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그랬기에 사쿠라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널 다시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저도, 선배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사쿠라이였지만, 마츠모토는 예외였다. 사쿠라이에게 있어 마츠모토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리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앞으로 잘 부탁해.”



Posted by Lucy_jey
|


I have a dream

 

001

 

[사쿠라이 쇼 x 마츠모토 쥰] 

 

 

"이혼하자."  

"하, 누가 두려워할줄 알아? 나도 지긋지긋해. 이혼이라니, 잘됐네. 아이는 네가 길러. 애한테 발목 잡히긴 싫거든."  

 

 

언제나 제멋대로이던 그녀는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언 제나 화려하고, 제멋대로이던 그녀가 아이의 엄마로서,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잘해나갈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고작해야 24. 그녀말마따라 어린 아이에게 발목잡혀 남은 여생을 살아가기에 그녀는 어울리지 않음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2살된 어린아이를 버려둔 채 다른 남자와 놀아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각서, 그 하나만 적어."

"그걸로 끝이라면, 좋아."

 

 

제 아이를 버리겠다는, 그 무거운 이야기를 그녀는 가볍게 수긍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가진것 하나없는 내게 바라는 것이 없었던 그녀와 그녀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나의 마지막은 참으로 간단했다. 그저 이혼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 법원을 나설때는 이미 우리는 남남이었다.

 

 

"그럼 다시는 보지 말자."

"나도,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쿠라."

 

 

봄 철에 벚꽃이 피어날 때 내 옆으로 왔던 여자는, 3년 뒤 벚꽃이 져가는 시기에 내 옆을 떠나가고 있었다. 내 인사에도 몸을 돌리는 일 없이 매정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모며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것 같은 제 자신을 억눌렀다.

사랑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정이 들었는지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빠아-"

 

 

그런 내 자신을 위로하듯 내 품에 안긴, 작은 공주님이 내 옷자락을 쥐며 웅얼거렸다. 이제 2살인 아이는, 나의 딸은 참으로 상냥한 아가씨임에 틀림없었다.

 

 

"응, 아빠가 힘낼께, 사츠키(沙月)."

 

 

 

 

***

 

 

 

"결국, 이혼한거네. 그 여자 꽃뱀이라니까 그렇게 내 말도 안듣더니."

"네게 잔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건 아니야. 카즈."

"지금 어딘데?"

 

 

전 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내 가장 친한 친우의 목소리에 힘없이 답하자 답답해진 모양인지, 물어오는 목소리가 날카롭다. 유난히 사람에 대해 통찰력이 좋던 카즈는, 처음 사쿠라를 만나자마자 내게 꽃뱀이라며, 마음을 주지 말라. 그리 신신당부했었다. 그런 카즈의 말을 듣지 않고, 아이가 생겨 결혼했고, 결국 그 결과가 3년의 마음고생이었다.

 

 

"쥰-"

"카즈."

"우으. 카아-"

 

 

내 목소리를 따라하려는 듯 요새 옹알이가 늘어난 나의 딸, 사츠키가 그 작은 입술을 웅얼거렸다. 그런 나의 모습과 내 품에 안긴 사츠키의 모습에 뭔가 답답한 듯 보이는 카즈였지만, 아이를 앞에 두고 뭐라 할 수 있을만큼 매정한 녀석은 아니었다.

근 처 카페로 들어가 가볍게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아이는 피곤했는지, 어느새 내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사실, 사츠키는 그리 키우기 어려운 아이는 아니었다. 까다롭거나, 밤낮이 바뀌는 법도 없었고, 잠자리 투정도 거의 없는 순한 아이.

잠든 아이를 가볍게 토닥이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즈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쥰. 내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르겠는데.."

"안, 듣고 싶은데."

"알아. 그래도... 들어둬. 너 이제 22살이야. 너한테 내가 하는거 엄청 잔인한 소리인건 아는데, 사츠키, 네가 키울 필요는 없어."

"......."

"너 이제 22살이야. 그런데 아이에게 발목잡힐 셈이야? 엄마도 없는데?"

 

 

맞는 이야기였다. 사실 누구나 듣는다면 공감할만한 이야기. 젊은 남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고 한다면 듣기에 충분한 이야기. 하지만... 

 

 

"내가 싫어."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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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그 말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할만큼 온 몸이 물에 젖은 솜마냥 무거웠다.

 

바쁜 방송활동이며, 행사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정탓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녀왔어요."

"으응- 우리 공주님은?"

"자죠."

 

 

잔뜩 지친탓인지 물어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늘어지는 목소리로 답하자, 후훗- 하며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씻고나와요."

"나- 피-곤-한데...."

 

 

죽죽 늘어지는 말꼬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호했다.

결국 재촉에 못이겨 느릿느릿 욕실로 걸어가는 제 뒷모습을 보며 웃는 그녀의 목소리를 배경음삼아 가볍게 샤워를 하고 나온 명훈은 몽롱한 시선으로 쇼파로 다가갔다. 사랑스러운 딸 나율이가 보고싶긴했지만, 자는 아이를 깨우고 싶진 않았다.

그때였다.

 

 

"우으- 바아-"

 

 

귀여운 목소리에 축 늘어져있던 명훈이 튀어올랐다.

 

 

"나율아?"

"헤에- 바아-"

 

 

이제 겨우 옹알이를 시작하는 아이는 제 아비를 아는듯 명훈을 보며 졸린듯 가물거리는 눈에도 불구하고 헤실헤실 웃고있었다. 방금전까지의 피곤을 지워버린 명훈이 아이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아이 특유의 높은 체온이 명훈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사랑해- 우리 딸-"

"하여간 딸 바보라니까.."

 

 

옆에서 기쁜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아내의 목소리에도 명훈은 즐겁게 웃으며 아이를 다독였다. 가물가물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며 명훈은 옆에 누워서 아이를 다독였다. 따스한 아이의 체온 탓인지 명훈 또한 점점 졸리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방에 들어온 그녀가 비슷한 포즈로 자는 아버지와 딸을 보며 살풋 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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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싫어!"

"혀, 형!!"

 

단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윤택의 음성에 승일이 당황해 윤택을 불렀다. 승일이 데려온 녀석은 난처한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 뻘쭘한 모습에 결국 입을 연것은 영진이었다.

 

 

"한번 쯤 시켜봐도 괜찮잖아?"

"야! 너까지?"

"밑져야 본전 아니냐."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을 한 윤택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것을 본 승일이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며 데려온 녀석에게 다가갔다. 영진은 그런 승일을 보며 낮게 킬킬거리며 윤택의 옆에 앉았다.

 

 

"표정 좀 풀어라. 못하면 그냥 안된다고 잘라버리면 되잖냐?"

"조금만 실수해봐라."

 

 

이를 가는듯한 윤택의 표정에 영진은 피식 웃으며 승일과 얘기중인 녀석을 바라봤다. 그러고보니 방위사업체에 다닌다는 녀석은 옷차림은 조금 촌스럽긴했지만, 잘 살피면 아직 앳된녀석이었다. 제대로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단 저 또래가 다 그렇듯 조금 겉멋이 들어서 노래한다는 녀석이겠지. 삐딱한 시선이라면 상당히 삐딱한 시선이지만 요 근래 크루에 들어온다는 녀석들이 다 그런 녀석들인만큼 영진의 시선이 삐딱해지는것은 당연했다.

 

 

"그, 그럼 할께요."

 

 

조금 긴장한 듯 떨리는 음성에 피식 웃은 영진이었지만, 곧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입가의 비웃음을 지운채 그 목소리에 집중했다. 기교라던가 스킬같은 부분은 분명 부족했다. 크루에는 그 이상의 스킬과 기교를 지닌 녀석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을 떠나 그의 목소리는 특별했다. 한 순간에 사람을 휘어잡는 마력. 그것은 아무나 가지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니까. 그 순간 영진은 그 녀석에게 완전히 사로잡혀버렸다.

 

 

"이건, 100%데."

"응."

 

 

 

[김명훈 100제] 012. 어리광 (영진명훈) 

 

 

 

"날 용서해

너에게 이런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아-♪♬"

"잠깐, 김명훈! 음정이 엉망이잖아?"

 

 

가만히 노래를 듣고있던 윤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명훈을 바라봤다. 어제까지만해도 잘 따라오던 노래가 갑자기 저렇게 엉망이 될 리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윤택형."

 

 

저 자신도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는 명훈을 바라보면서 윤택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 번 더-"

 

 

하지만 다시 부른 노래는 아까보다 더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그 노래에 윤택의 얼굴이 완전히 엉망으로 변햇다.

 

 

"완전 더 엉망이잖아. 너-"

 

 

명훈의 옆으로 다가가던 윤택은 명훈에게서 느껴지는 열기에 잠시 멈칫했다. 가만히 보니 살짝 들뜬 얼굴과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닌듯 싶었다.

 

 

"잠깐-"

"혀, 형?"

 

 

묘하게 느린 명훈의 반응에 윤택이 명훈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유난히 뜨거운 온도에 그 얼굴이 구겨진 당연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얘길해야지!! 바보녀석이."

"그리 아프진, 않, 은데.."

"웃기는 소리. 영진아-"

 

 

명훈의 변명을 단숨에 일축해버린 윤택이 걱정스러운 듯 보고있는 영진을 불렀다.

 

 

"네가 데리고가서 좀 쉬게해줘."

"아? 아아-"

"연인이면 연인답게, 몸관리는 시켜라."

 

 

옆에 스쳐지나가면서 으르렁거리는듯한 어조의 윤택의 목소리에 영진은 곤란한 표정을 지은채 명훈에게 다가갔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이리 아플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게 조금 미우면서도 그만큼 자신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나 싶어 아쉽기도 했다.

 

 

"가자."

"폐, 끼쳐서, 미안해요, 형..."

 

 

-

 

 

집까지 돌아와 명훈을 침대에 눕혀 약까지 먹인 영진이 명훈의 옆에 앉았다. 가물가물 흐린 눈으로 영진을 바라보며 명훈이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혀엉-"

"아프면 아프닥 얘기를 좀 해줘라-"

"헤헤-"

 

 

열에 들떠 무방비가 되어버린 탓인지 명훈의 모습이 평상시보다 더 귀여워보이는 탓에 영진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내- 옆에, 있어줄, 꺼죠?"

"그래, 그래. 걱정말고."

 

 

영진의 대답에 헤실 웃은 명훈이 영진의 손을 잡고 제 볼로 가져갔다. 서늘한 체온이 볼에 닿아 기분이 좋은지 손에 얼굴을 비비며 무방비로 웃는 모습은 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였다. 평상시 워낙에 어른스럽게 구는 녀석인만큼 이런식으로 어리광 부리는 모습은 보기 힘든만큼 영진은 명훈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잘자."

"우응-"

 

 

명훈이 잠드는 모습을 보며 영진은 기분좋은 웃음을 머금었다.

처음 명훈이 승일에 의해 오디션을 위해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부터 영진은 이미 명훈에게 끌리고 있었다. 아직은 앳된 외모와 귀염성 있는 행동, 그와는 반대로 어른스러운 생각. 그리고 음악에 대한 순수하고 강한 열정. 하나하나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영진은 명훈이 좋아졌다. 그랬기에 고백했고 , 다행히 명훈 또한 승낙하여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전혀 기대려하지않는 명훈탓에 조금 속이 상하곤 했지만, 약해지면 본래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했던가, 자신에게 어리광부리는 명훈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영진이었다.

 

 

"뭔가, 먹을걸 준비해볼까?"

 

 

조금 뒤 명훈이 일어난 뒤 먹일 음식을 만들기위해 일어나려던 영진은 뭔가 당겨지는 기분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피식 웃고말았다.

 

 

"그래그래, 옆에 있을께."

 

 

잠든 와중에도 제 옷자락을 꽉 쥔채 놓지않는 명훈의 손을 상냥히 쓰다듬으며 영진은 의자에 앉았다.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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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요소주의




명훈아, 안녕.



오랜만에 적는 편지다. 조금 쑥스럽고, 민망하던 기분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왠지 이렇게 펜을 들고 있으면 무서워진다.


네 말이 맞았어. 겁쟁이에, 소심하고, 바보같은 박승일.


그러면서도 넌 늘 날보고 그게 너무나 다정하고 착해서 그런거라, 그리 말했었지? 이렇게 있자니, 도저히 그 말은 공감 못하겠다. 난 네가 생각하던것만큼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았는데.


오 늘은 날씨가 추워. 너는 춥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니까. 이제 챙겨줄 수 없다는게 이렇게 괴로운 것임을 몰랐어. 네가 떠난뒤의 첫 겨울은 유난히 춥다. 3월에 눈이 내리는 광경이라니... 네가 떠난지 9개월이 넘었음에도 너만을 생각하는 날 보면 넌 어떻게 반응할까? 그러지 말라고, 울먹이려나? 그럼 조금 슬플것같기도 하다.


명훈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니? 유난히 날이 좋았어. 그저 캠퍼스를 걷는 조그만 그 뒷모습이 예뻐서, 여자라 착각하고 말을 건 내 모습에 황당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던 네 눈빛이 아직도 선명해. 저, 여자 아닌데요. 라면서 새초롬히 웃던 그 모습이 얼마나 자극적이었는지, 아마 넌 모를거라 생각한다. 처음엔 날 미친놈 보듯 바라보던 네가 환히 웃으며 내게 승일형이라 부를때면 간질간질해지던, 가슴이 따뜻하던 그 풍경이 이제 과거가 되어버렸다니, 솔찍히 지금도 믿고싶지 않아.


조금만 네게 애정표현을 해줬다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해. 조금만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조금만 더 손을 잡고, 조금만 더 대담하게 애정표현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독하게 무뚝뚝해서, 언제나 널 애타게 만들던 날 이렇게 변하게 만들다니. 그러고선 넌 떠나가버리다니, 너 굉장히 나쁜 녀석이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네가 돌아온다면 나 원망도, 미움도, 그 무엇도 하지않을꺼야. 그냥 꼭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네 보드라운 입술에 입맞추고 싶어.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걸 아니까, 힘들다.


얼 마전, 우연히 들린 가게에서 윤택형과 광선이를 봤어. 네가 그토록 춤을 배울거라면서, 동경하는 형이라고 말하던 윤택형은 댄스교습소 강사로, 네 후밴데 노래를 잘한다고, 네가 눈을 반짝이면서 칭찬하던 광선이는 지금 보컬트레이너라고 하더라. 너와 헤어진 후 굉장히 오랫만에 본거라 조금 어색했지만, 그런거 상관없을만큼 순식간에 예전으로 돌아갔어. 너와 함께였다면 더욱 기뻤을꺼라, 그리 쓴웃음 짓더라. 너와 같은 하늘아래에서, 너와 함께 웃고, 울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이제서야 깨닫다니. 나 참 바보같다.


너와 내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린 뭘하고 있을까? 아마 넌 가수로 노래를 부를테고, 난 널 위해 노랠 작곡하겠지? 지금도 널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었다가, 네가 내 곁에 없음을 깨닫고 꺼내지 못한 노래가 많아. 작곡가로서는 그럭저럭 이름이 알려진 편이라 이 노래들,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을테지만, 그러기 싫더라. 이건 내가 널 생각해서, 너만을 위해 만든 노래니까,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고싶진 않아. 이런 내 고집에ㅡ 그 고집 누가말려? 라면서 타박을 줄 너일텐데.


그저 별 것 아닌일에 웃다가, 널 생각하면서 울곤해. 네가 미치도록 보고싶어서, 네 목소리를 미치도록 듣고싶어서, 그 무엇보다 네 얼굴을, 네 웃는 모습을 잊어가는 내가 바보같아서. 사진 속의 넌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어색해서, 마치 다른사람 같다는 생각을 종종해. 너의 눈 웃음은 그 무엇보다 예뻐는데... 너의 그 환한 미소는 그 무엇보다 밝았는데... 너와 헤어진지 고작해야 9개월만에 모든것을 잃어가는 이런 어리석음은 괴롭다. 넌 차라리 잘되었다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모조리 잊어버리라고, 너의 그 마지막말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제일 괴로워하는건 너일테니까. 윤택형과 광선이도 그러더라. 이제 조금씩 잊어가야하지 않느냐고, 마음 속에 묻어야할 때라고. 맞는말이야. 필요없는 고집을 피우는지도 모르겠다.


현 실에 치이고, 일상에 치이면 널 잊어갈 수 있다, 그리 생각했던 난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에 괴로워하지도, 아파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난 그 무엇보다 네가 소중하니까, 내 인연은 너 하나라 그리 생각했으니까.


중뇌... 네가 붙인 그 별명보다 더 내게 어울리는 별명이 있을까? 네 말대로 난 하나밖에 바라보지 않아. 그렇기에 난 너 하나만 바라봤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않고. 그것이 이렇게 아플줄도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명훈아. 나의 이런 모습에 아파하지마. 살아있으니까, 그래서 아픈거야. 네가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넌 아파할 필요도 없어.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말았으면 좋겠다.


난 네가 원했던대로 건강하게, 아프지않게 내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꺼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뒤에 내가 너의 옆으로 갔을때, 네가 웃으면서 반겨줬으면 좋겠다. 형은 바보라고 그리 말하면서, 하지만 더없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정말 기쁠꺼야. 정말 미치도록 네가 보고싶지만, 너무너무 아프지만, 그건 그냥 형의 투정이라 생각해줘.


그럼 명훈아, 하늘에서 형을 지켜봐줘. 사랑해,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영원히.






2012년 3월 19일.
너를 그리며, 그 무엇보다 널 사랑하는 형이.







* * *







승일은 간신히 펜을 놓았다. 저도 모르게 울컥 터져나오는 눈물이 지독히 아팠다. 편지지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글자가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승일은 급히 편지지를 접었다.




'명훈아!!!'
'안, 다쳤어요? 다행...이다.. 건강해서..'
'네가, 다쳤잖아. 명훈아? 명훈아!!!'
'형- 그냥, 모두... 잊어요.... 난.... 그..... 무엇보다....... 형이........ 좋으니...까... 사......랑.....ㅎ...ㅐ....'
'아...안돼...! 명훈아!!!!!!!!!'





그 날도 그리 말하며 웃던 명훈이었다. 차에 치일뻔한 자신 대신 차에 치여 피투성이로 그 생명을 잃어가면서도, 그리 환히 웃었다. 제 목숨이 스러져가는것을 알면서도.
승일은 간신히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은 명훈이 있는 납골당으로 가야할터였다. 명훈의 앞에 꽃을 바치고, 이 편지를 소중히 놓아둬야만했다.




"명훈아.. 사랑해..."




승일은 작게 한숨쉬듯 중얼거린뒤, 눈을 감았다. 꿈 속에서라도 명훈의 모습을 보기를 바라면서.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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