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괴로운 것이다. 그것이 결코 이뤄질 리 없는, 혼자만의 괴로운 마음이라면 더더욱.사랑의 자각은 한 순간이었다. 형제, 그것도 태어난 이후부터,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언제나 제 옆에 있었던 쌍둥이 형제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지나가던 날의 하루였을 뿐이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옆을 보았고, 그 녀석의 얼굴이 보였을 뿐이었다. 우습게도 제 심장이 덜컥- 낯설게 뛰었다.
숨기려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제 심장은 제 맘과는 달리 녀석의 옆에만 있으면 옆에 들리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격하게 뛰어댔다. 몇 번을 부정하고, 몇 달을 고민했으며, 몇 년을 숨겨왔다. 허나 우습게도 시간이 갈수록 제 맘은 사그라지기는커녕 한껏 커져가기만 했다.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녀석이 좋았다.
그랬기에 결국 말하고 만 것이다.
“좋아해. 형제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널... 사랑해.”
아마 거부당할 것이다. 그것을 각오하고 고백했다. 이 마음이 너무 커서 숨이 막힌다. 너와 어쩌면 다시는 웃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 “뭐야, 카라마츠. 그리 심각하게. 설마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내가 이런 장난 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아무 대답이 없는 네 모습에 후회가 밀려온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암담함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지만 그것은 나답지 못하기에, 아무렇지 않은 것마냥 웃으며 지금껏 장난을 친 것 마냥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다.
나름대로 연기는 나쁘지 않아.
그리 생각하며 몸을 돌린다. 뺨이 왠지 축축해지지만 저 녀석과 멀어질 때까지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정말로 장난이었던 것처럼 그리 행동해야한다.
조금 괴롭지만, 조금 아프지만 난 괜찮아.
마츠노 오소마츠는 괜찮아.
“형님.”
뒤에서 따뜻한 온기가 자신을 감싸 안고, 귓가에 낮은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다.
“정말 장난이었던 건가?” “....” “진짜 장난이었어?”
낮게 물어오는 네 목소리에 답하지 못한 것은, 네게 했던 내 고백은 진심이었던 탓이요, 둘째로는 너의 따스한 품에서 거짓을 답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언제나 형님은 그렇게 넘기려하는군.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카....라마...츠....”
네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허약하고 연약하다. 아아, 이건 나답지 않아.
“다시 한 번 물을게. 정말... 형님은 정말로 장난으로 내게 고백했던건가?” “그럴리... 없.. 잖아...”
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머리와는 달리 입은 이미 정직하게 답하고 있었다. 바보같아. 둔해진 사고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난 우스운가.
“오소마츠.” “..!..”
종종 제 이름을 부르곤 했지만, 기본적인 호칭은 형님이었다. 그런만큼 갑자기 제 귓가에 울리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자신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사랑한다.” “거, 짓말.” “거짓말 아니야. 정말로, 오소마츠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 나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숨길 생각이었다.”
믿을 수 없는 대답에 오소마츠는 조심조심 고개를 돌렸다. 온화하고 다정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미소를 띈 카라마츠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여섯쌍둥이의 장남이 아니라, 나의 연인이 되어주면 좋겠어.”
이 환희를 뭐라 표현할까.
나는 차마 카라마츠를 볼 수 없어,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평생 동안 밝힐 수 없는 연인일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카라마츠의 마음 한 구석에 나의 자리가 있다는게 기뻤다.
"고백은 내가 먼저 하려했는데, 오소마츠가 먼저 해버려서 순간 당황했다.” “?!”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는게 느껴졌다. 아까 내 고백에서의 침묵은 그런 의미였던가. 같은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크고, 좀 더 남자다운 손이 제 손을 살짝 쥐었다. 그리고 내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다. 얇고 단순한, 가운데 작은 푸른색 보석이 박힌 은빛의 반지.
그 안쪽에는 K.M 이라는 영어가 작게 새겨져있었다.
“고백하려고 한참동안이나 준비했던거다. 우린 대놓고 연인이라고 할 수 없을테니까, 커플링이라고 주고 싶었기에.”
그리 말하며 카라마츠는 살짝 제 목에 걸린 얇은 은빛의 목걸이에 매달린 붉은색의 보석이 박힌 작은 은빛의 반지를 꺼내보였다. 안에는 O.M 이라는 작은 문자.
“내 색과 이니셜이 박힌 반지는 오소마츠에게, 네 색과 이니셜이 새겨진 반지는 내가 가지려고 계속 준비했던거다. 사랑한다, 오소마츠.”
어쩔 수 없을 만큼 멋진 나의 동생, 그리고 오늘부터 나의 연인.
“사랑해, 카라마츠.” “아아. 행복하게 해주지. 오소마츠.”
은빛의 반지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 빛났다.
+
side. 카라마츠
반지를 쥔 채 물기어린 눈동자로 울먹이는 오소마츠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
자유롭고 다정하며, 상냥한 나의 오소마츠.
오소마츠를 좋아한다고 자각한 것은 막 고등학교에 올라왔을 무렵이었다. 밝고 활동적인 성격에 사교성도 좋은 오소마츠는 손쉽게 타인과 어울리곤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었다. 그런 오소마츠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계속 눈으로 쫓고있는 자신이 있었다.
“카라마츠군은 마치 오소마츠군을 사랑하는 것 같네.”
자각은 같은 반 동급생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이 평범한 형제애와는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평생 오소마츠의 옆에 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어릴적 오소마츠의 동료는 쵸로마츠였다. 성장하면서 점점 그가 오소마츠의 옆에서 멀어졌고, 그와 동시에 오소마츠는 혼자가 되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은 외로움을 잘타고 섬세한 오소마츠의 옆에서 그의 새로운 동료가 되었다.
모든 형제가 그를 형이라고 부르기에 언제나 홀로 짊어져버리는 것을, 일부러 이름을 불러 그와 동등한 관계로 올라서서 그의 짐을 아무렇지 않은 듯 덜어주곤 했다. 오소마츠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점점 쵸로마츠보다 자신을 의지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의 옆에서 머물면서 그의 절대적인 아군으로 자리잡게 되자 오소마츠는 점점 카라마츠에게 시선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오소마츠의 눈동자가 단순한 형제에 대한 친애의 감정에서 연애의 감정으로 발전한 것을 알아차렸다. 언제나 오소마츠만을 바라봤기에 알 수 있었던 변화였다. 당장이라고 그에게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런다면 그는 도망쳐버릴터. 그렇기에 하나하나 오소마츠가 도망칠 구석을 배재해나가면서 평범한 형제를 연기했다.
“너, 대체 뭘 꾸미는거야?”
소심하지만 섬세하며 예민한 이치마츠가 뭔가를 알아차린 듯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방해는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인내의 끝에 드디어 오소마츠가 오늘 고백을 해왔다. 길고 긴 인내의 끝은 달콤했다. 한참을 울던 오소마츠는 지친 듯 자신에게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이거.... 꿈은 아니지?” “꿈이라면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은데.”
어딘가 불안감이 섞인 그 목소리에 카라마츠는 낮게 속삭였다. 그 말에 베시시 웃은 오소마츠는 어느 순간 조용히 잠에 빠졌다. 왼손 약지에 얇은 반지가 반짝였다. 오소마츠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면 이치마츠만이 있었다.
“너...!!”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이치마츠를 보며 그는 가볍게 웃었다. 이치마츠는 내가 오소마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뒤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치마츠는 늘 내게 유난히 날카로웠다. 그것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에 그저 무시할 뿐이었다. 아니, 오소마츠의 눈이 한번이라도 더 내게 닿게 만든다는 점에서 꽤나 괜찮은 일이기도 했다.
“오소마츠를 깨울 셈인가?” “무슨, 생각이야?” “별다른 건 없다. 네가 걱정하는 일도 없고. 그저 형제가 연인이 되었을 뿐.”
일그러진 이치마츠의 표정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것이 이치마츠의 속을 더 뒤집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은 그러했다.
“너, 정말 미친놈이야.” “형님을 네가 울릴 셈이라면 맘대로 해도 좋아.”
이치마츠의 약점은 오소마츠였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 모두 매한가지였다. 그런만큼 이치마츠는 형님을 괴롭게 만들지도 모르는 선택지를 택할 리 없었다. 뭐라하든 오소마츠는 나의 연인이 되었고, 내가 뒤에서 수작을 부렸다한들 그 마음은 오소마츠의 선택이었다. 그 뒷 공작을 말해봤자 아픈 건 오소마츠였다.
“울리면 너 죽여버릴 거야. 싸이코패스새끼.” “아아. 명심해두지.”
이치마츠를 뒤로한 채 우리들이 함께 생활하는 방으로 올라와 오소마츠를 눕혔다. 잠든 오소마츠는 조금 더 어려보이고, 조금 더 약해보였다.
굳어진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 쵸로마츠는 침대위에 누워있는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을 보던 굳게 닫힌 눈. 탱탱하면서도 말캉하던 볼은 살이 빠졌고, 피부색은 창백해서 마치 다른 사람 같은 기분이었다. 조심히 손을 뻗어 볼을 만지면 예전의 아이마냥 부드럽고 매끈하던 감각과 달리 거친 감촉.
“미안. 형..”
울먹이는 얼굴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을 잡고 있는 것은 막내 토도마츠였다. 그 앙상한 손목에는 짙은 붉은 색의 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흉터가 손목을 빼곡하게 덮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이 괴로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팔에서 눈을 돌렸다.
“형 일어나면 같이 놀자!! 그러니까, 그러니까...”
“같이 놀기 위해서... 일어날꺼야... 분명... 혼자 있는거 싫어하니까..”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만들어내던 쥬시마츠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한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오소마츠만을 바라보면서 이치마츠가 작게 마치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 카라마츠는 그런 동생들과 단 하나뿐인 형님을 한발 떨어진 곳에서 나도 놀랄 만큼 냉정하게 보고 있었다.
---
오소마츠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것은 카라마츠, 자신이었다. 갑작스러운 마츠요의 전화에 당황하던 카라마츠는 그 내용이 오소마츠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이라 더욱 놀라고 말았다. 마츠요의 전화가 끊어지고 카라마츠는 잠시 전화기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뇌리에 떠오른 것은 마지막으로 봤던 오소마츠의 모습.
언제나 강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앞에서 여섯 쌍둥이를 통솔하던 오소마츠의 연약하고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던 모습. 그것은 카라마츠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마음 속 한구석에서 오소마츠는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던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나와서도 불안했다. 오소마츠가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집을 나서던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라고 집에 있으면 변할 수 없다. 여섯 쌍둥이의 모라토리엄은 너무나 행복하고 벗어나기 싫을 만큼 상냥하지만, 그것은 평생 지속될 수 없는 아주 짧은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츠노 오소마츠라는 존재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모라토리엄.
동생들이 가장 힘들 때 뻔뻔한 얼굴로 웃으면서 다가와 그 옆에서 가만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위로해주는 그 상냥함이 좋았다. 쓰레기에 제멋대로, 제 내키는 대로 사는 것 같으면서도 가족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다정한 눈으로 가족의 위기를 바라보고 그걸 막아서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랬기에 알았다. 오소마츠가 장남이라는 무게에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장남이라는 무게를 홀로 견디며 무너질 듯 휘청휘청-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웃어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카라마츠는 오소마츠가 마츠노가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20대 청년 마츠노 오소마츠이기를 바랬다.
그랬기에 쵸로마츠의 취업을 계기로 자신도 집을 나왔다. 오소마츠가 오소마츠이기 위해서는 형제들이 옆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결과는 실패. 형제들이 없어지고, 결국 오소마츠는 망가져버렸다.
“너희들이 떠나고, 오소마츠가 조금 이상해졌어. 멍하니 지붕위에서 하늘만 바라보거나, 가만히 아카츠카 선생님의 초상화만 바라본다거나. 처음에는 너희들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단다. 그 애, 너희들이 떠나고 거의 말도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있다는 걸.”
마츠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소마츠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오소마츠는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속이려는 듯 제멋대로에 뻔뻔하고 쓰레기 같은 언행을 보이지만 정해진 일정한 선은 절대 넘지 않는 그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이 좋았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처럼 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외로운 것을 싫어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결벽증 적인 성향은 동생들에게조차 제 자신의 본심을 속이곤 했다. 그것을 그나마 잘 알아채는 것이 오소마츠의 옛 동료인 쵸로마츠였고, 차남으로 오소마츠의 옆에 있던 나였다.
외로운 것을 싫어하는 그를 혼자 그 집에 놔두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뭐라해도 우리들의 실수였다. 한 명씩, 천천히, 마츠노 오소마츠가 형제들에게서 자립할 수 있도록, 그래서 마츠노 오소마츠 본래의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했어야했다.
“언제부터인지 저 아이, 평범하게 우리에게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단다. 그래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어. 참, 나도 바보네. 오소마츠가 거짓말에 얼마나 능숙한지 알면서도 속아버리다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때부터 오소마츠, 자해를 시작한 것 같아. 아마 자신 혼자 있는 그 순간이 싫어서였겠지. 점점 상처를 깊게 내기 시작해서, 집에 가니까 .... 새빨간 피가, 엉망으로....”
“엄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울먹이는 마츠요를 바라보면서 카라마츠는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바보같은 형.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마지막까지 혼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그 직후 병원에서 오소마츠 깨어났었단다. 우리를 보면서 차마 우는것보다 못한 표정으로 웃는데.. 그리고 정신과적 상담을 받았어. 정신과 의사선생님께서 그러더구나.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한 강한 스트레스로 인해 혼자 있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는 공포증이 생긴 것 같다고. 자해행위는 그로 인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오소마츠가 최후로 선택한 도피수단 같다고. 그거 듣고 어떻게든 오소마츠의 옆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단다. 하지만 오소마츠에게 있어서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이 우리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든 자해행위를 했어. 식사조차 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입원밖에 없더구나.”
입원 후 오소마츠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서 결국 자해행위를 막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재워놓는 것 외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노라고, 그래서 지금은 아예 영양공급도 주사를 통해서만 하고 있다고 말한 마츠요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요히 잠든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아주 깊고 깊은 심연을 헤매는 오소마츠의 마음을 구할 수 있는 건 우리 여섯 쌍둥이 뿐이라고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연락할게요. 아마, 다 온다고 생각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연락해서 오소마츠의 소식을 전하고 다음날, 우리들은 병실에 모였다. 2시간정도쯤 지나면 약 효과가 떨어져서 깨어날 것이라는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후 우리 형제들은 침상에 조용히 잠든 형님의 옆에 자리했다.
“우리한테 제일 힘이 되어준 것은 형님이야. 이제 , 우리가 형님의 손을 잡아줄게. 그러니 이만 일어나.”
카라마츠는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약으로 잠든 너의 눈에 비치는 것은 어떤 세계일까? 하지만 어쩐지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여섯 쌍둥이들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웃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세계겠지.
“으,,, 우으....”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오소마츠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다들 숨쉬는 것조차 잊은 채 오소마츠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눈꺼풀이 열리고 어딘가 흐리고 몽롱한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가 옆의 동생들을 발견했다. 새카만 동공이 조금 커지면서 몽롱한 빛의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듯 데굴데굴 굴렀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꿈?”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던 탓에 살짝 갈라진 목소리가 혼란스러운 듯 울렸다.
“꿈 , 아니니까. 바보 장남.”
“마음대로 형을 버리고 떠나버려서 미안.”
“형!! 형!! 또, 같이, 야구하고, 놀아!!”
“형, 우리 버리고 떠나려고 하지마!!!”
최대한 원래의 자신을 연기하려하다가 실패한 채 울먹이면서 제 품에 달라붙는 동생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오소마츠는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이, 우리 모두 다 같이 함께 있을게. 형님이 무서운 곳에서 혼자 있지 않도록.. 그러니까 형님, 혼자서 죽으려 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살아줘.”
내 말에 머뭇머뭇 거리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면서 그 메마르고 가는 손을 쥐었다. 조금만 힘이라도 주면 부러질 듯 연약함이 형님, 그 자체였다.
“우리가 미안해. 그러니 떠나지마. 우리가 형님의 손을 잡아줄테니까.”
“....너희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오소마츠는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담요에 툭툭 - 떨어지는 물방울이 오소마츠가 울고 있다고 말해줬지만, 우리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오소마츠를 끌어안았다.
---
“휠체어 귀찮아.”
“자업자득인거, 알지? 바보 장남.”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당연한 듯 츳코미를 건 쵸로마츠의 대답에 오소마츠는 아무말도 하지못한채 그냥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가 떠나있는 동안 자해행위를 거듭한데다가 입원후에는 거의 약물로 재워지기만 했던 오소마츠의 몸은 너무 약해져 있어서 당분간은 휠체어에서 생활하면서 재활이 필요한 상태였다.
밝고 활동적인 오소마츠에게는 그야말로 감옥이 따로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오소마츠의 표정은 밝고 행복해보였다.
“아아- 하늘 예쁘다.”
노골적인 말돌리기라는 것을 알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아마 나뿐만이 아니리라. 뼈만 앙상한 오소마츠의 손을 살짝 잡자, 반대쪽에서 토도마츠가 비어있는 오소마츠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럽게 손을 잡혀서 조금 민망한 듯 우리들을 외면한 오소마츠는 수줍은 듯 기쁜 얼굴로 웃었다.
세상에는 센티넬과 가이드가 있음. 센티넬은 보통 13~17세 사이에 각성 + 폭주함. 그래서 국가에서는 13세에서 20세까지 무조건 6개월에 한번씩 센티넬 검사를 받게함. 그에 반해서 가이드는 센티넬과 직접적으로 조우하지 않는 한 가이드로써 발현되지 않음. 가이드가 센티넬을 안정시키는 것은 접촉, 특히 점막접촉 및 체액교환이 가장 확실한데 문제는 센티넬은 가이드가 없으면 안되는데 가이드는 센티넬이 없어도 상관없음.
가이드로 판명나더라도 센티넬을 케어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국가에서도 인권적인 문제가 있으니까 강제하지못함. 그래서 생긴 것이 가이드를 강제적으로 센티넬 아래에 둬야한다는 과격파인 센티넬 자유연합. 처음에는 가이드는 센티넬을 케어하는 것을 법적으로라도 정해둬야한다는 생각을 지닌 쪽이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점점 센티넬 범죄자들의 온상이 되어감.
토고는 마츠노가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10살이던 오소마츠가 납치됨. 센티넬 자유연합에 의해서 납치된 피해자가 많아지니까 국가에서 구출작전을 벌였고, 결국 9명의 아이들을 구해냄. 오소마츠도 그 중 한 명인데 납치되었던 아이들은 납치된 이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림. 그건 오소마츠도 마찬가지라서 납치되었던 6개월간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림. 그 후 그 납치되었던 아이들은 다들 국가기관의 감시를 받으면서 살게 됨.
이 후 집으로 돌아온 오소마츠는 평범함 일반인으로 살아가게 됨. 사라진 6개월의 기억이 궁금하긴하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오소마츠는 그 때의 기억을 찾으려고 하지 않음. 그 사이 동생들이 센티넬로 각성하기 시작함. 제일 처음 각성한 것은 쥬시마츠가 14살 때. 쵸로마츠도 뒤를 이어서 3개월 뒤에 각성하게 됨. 원래 센티넬은 주변환경에 민감해서 다른 센티넬이 있으면 이어서 각성하기 쉬우니까 쵸로마츠도 쥬시마치에게 이끌리듯이 깨어난 거임.
그렇게 두명이 센티넬로 각성함과 동시에 카라마츠와 이치마츠, 토도마츠가 가이드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됨. 형제들 옆에만 있으면 센티넬 수치가 평범하게 되는 것을 보면 명확한 것이니까. 그렇게 형제들이 센티넬과 가이드로 각성하는 와중에도 오소마츠는 평범한 시간을 보냄.
이후 시간이 흘러서 오소마츠는 23살이 됨. 그 때 납치되었던 아이들 중 2명은 가이드, 4명은 센티넬로 각성했고, 미각성자는 3명 밖에 없음. 성인이 되면서 특수한 능력을 지닌 동생들은 국가기관이 의뢰로 오소마츠와 따로 움직이는 일이 많아짐. 동생들과 떨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소마츠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함.
안절부절하기도 하고, 괜히 짜증이 나서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줄인채 집에만 틀어박힘. 어느날 엄마인 마츠요의 심부름으로 밖으로 나온 오소마츠는 불량배들과 얽힘. 원래라면 쉽게 이길 수 있는 녀석들인데 요근래 컨디션도 나쁘고, 기분도 최악인 오소마츠는 이기지 못함. 불량배들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오소마츠는 낄낄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겹쳐져서 흉악하고 무서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함.
--
“야야, 이 녀석 죽는거 아냐?”
「이 녀석들, 죽으면 어떻게 하죠, 선배?」
“죽으면 지 사정이고.”
「죽으면 지 사정인거지」
“죽으면 우릴 이기지 못한 이 녀석 잘못이야.”
「죽으면 센티넬로 태어나지 못한 이 녀석 잘못이지.」
----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던 오소마츠가 비명을 지르면서 머리를 부여잡음. 그와 동시에 오소마츠 주변에서 불길이 일어남.
사실 오소마츠는 센티넬이었음. 어릴 때 토고에게 납치당한 것도 센티넬이 주변에 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읽어내서 토고를 경계했고, 그런 오소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가 센티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토고가 오소마츠를 납치한 거였음.
납치 된 후 아직 어렸던 오소마츠는 5개월만에 불안정하게 각성했고, 그 각성 중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반인 어린아이가 오소마츠의 힘에 휘말려서 죽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두려움과 센티넬이라는 존재 자체에 공포를 지니게 된 오소마츠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능력인 기억조작을 사용함. S급의 남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던 오소마츠는 강하게 납치되어있던 동안의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다른 납치되어있던 아이들에게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쳐서 기억이 사라진 거였음.
오소마츠 본인은 자신이 센티넬이라는 사실도 모두 잊고, 센티넬에 대한 공포도 모두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 오소마츠는 납치 이후에 유난히 동생들에게 붙어서 지냈는데 그건 센티넬인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건 가이드인 동생들밖에 없다는 본능때문이었음.
하지만 동생들이 국가기관의 일을 하면서 동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줄어든 오소마츠는 센티넬로서 점점 불안정해져갔고, 이번에 불량들의 일을 계기고 센티넬로의 능력이 완전히 개화해버린거임.
과거가 플래시백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완전히 혼란에 빠진 오소마츠는 점점 깊은 어둠에 빠지면서 미쳐가기 시작함. 한편 기관에서 일하고 있던 동생들은 아카츠카구에서 센티넬 폭주소식을 듣고 가는데, 그 곳에 있는 것은 붉은 파카를 입은 자신들의 장남임. 센티넬의 폭주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센티넬 본인을 망가뜨리는데 그걸 아는 동생들은 어떻게해서든 오소마츠를 진정시켜야한다고 생각함. 쵸로마츠와 쥬시마츠에 의해서 간신히 틈을 만들어서 유난히 강한 가이드 능력을 지닌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다가감.
“오소마츠 형님. 늦어서 미안. 이제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줄테니까, 자. 진정해야지, 형님.”
“카... 라... 마츠.... 늦었.. 잖... 아.”
“아아, 언제나 난 형님에게 늦는군.”
카라마츠는 오소마츠를 다독이면서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댐. 조금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면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키스하고, 갑작스러운 각성과 폭주에 의해서 지쳐있던 오소마츠가 쓰러짐. 그 이후에 오소마츠는 정식으로 센티넬로 카라마츠와 파트너를 이뤄서 국가의 일을 돕기 시작함.
이 이후에 토고와 만나서 불안정해진 오소마츠를 달래는 카라마츠라던가, 꽁냥꽁냥 연애질하는 카라오소가 있으면 더 좋음.
상냥한 손길은 익숙한 것이었다. 약간 붉게 물든 눈가를 쓰다듬는 쵸로마츠의 손길에 오소마츠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너, 무슨 생각이야.”
“글세.. 형은 어떻게 보이는데?”
상냥한 그 눈동자에 깃든 깊은 광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오소마츠는 메마른 입술을 힘들게 달싹였다.
“우리, 형제야. 네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그건 변하지 않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비웃음 섞인 쵸로마츠의 목소리에 오소마츠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은 채 무덤덤한 시선을 보냈다.
“난 말야, 형이 좋아. 아니 사랑하고 있어.”
“받아들여준다고 생각하고 말하는거야?”
“그럴리 없다는거, 누구보다 내가 잘알아.”
피식피식 웃으며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제 품에 끌어안고, 그 목덜미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언제나처럼 오소마츠에게서 나는 따스한 햇살을 가득 머금은 향이 그의 비강을 간지럽혔다. 언제나 상냥한 오소마츠가 자신을 밀어낼 리 없음을 알기에 쵸로마츠는 마음껏 제멋대로 굴기로 했다. 어쨌든 오소마츠는 자신을 아끼고 있었다. 자신과는 방향성이 다르다해도.
“엄마한테 말해버릴까?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소마츠 형을 사랑하고 있다고.”
“쵸로마츠.”
평상시보다 좀 더 낮아진 목소리에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희열이 그의 등을 타고 흘렀다. 쵸로마츠는 아무렇지 않게 오소마츠에게서 자신을 떼어놓았다. 비강을 간질이던 오소마츠의 향이 멀어지는 것에 작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쵸로마츠는 느긋하게 오소마츠의 어깨를 밀어 바닥에 눕혔다.
바닥에 갑자기 눕혀졌음에도 아무 동요없는 오소마츠의 위에 올라앉은 쵸로마츠는 느긋하게 오소마츠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가볍게 입술과 입술이 마주치는, 버드키스에도 오소마츠는 냉정한 눈으로 쵸로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엄마한테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어.”
“...”
“하지만, 내가 말한다면, 형은 날 버리고 떠날꺼지? 이 마츠노가를 뒤로 한 채.”
“알고있으면 그딴 소리 지껄이지마.”
“엄마한테 질투나네. ........그거 싫으면, 입 벌려, 형.”
작게 투덜거린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명령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오소마츠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입술을 열었다. 열린 오소마츠의 입을 탐하며 쵸로마츠는 어찌할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언제라도 오소마츠가 원한다면 자신을 뿌리칠 수 있음을 안다. 고작해야 성장기인 16살의 자신과는 달리 오소마츠는 이미 27살의 성인. 그것도 학창시절에는 학교내 일진으로 군림하며 온갖 전설을 만들어낸 최강의 남자였다. 그런 오소마츠가 약해지는 것은 자신을 입양해준 부모님이었고, 부모님의 친아들인 자신뿐이었다.
오소마츠가 지금 자신을 받아주는 것은 만들어진 가족관계를 망가뜨리기 싫어서라는 것을 쵸로마츠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불쾌했다. 자신의 이 절실한 마음을 어찌해야 좋을지 아직 어린 쵸로마츠는 알 수 없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형...”
“미안.”
---
오소마츠는 언제나 자신이 서있는 곳이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늘 외롭던 그에게 빛이 되어준 것은 마츠노 부부였다. 수차례의 불임 시술과 몇 번의 시험관 아기 시술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실패한 부부는 결국 친자에 대한 미련을 포기한 채 양자를 들이기 위해 고아원을 찾았고, 7살이라는 나이탓에 늘 입양에 실패하던 오소마츠를 양자로 들였주었다. 혹여라도 버림받지 않도록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들로 행동하던 오소마츠의 세계에 금이 간 것은 그가 11살 때, 마츠노 부부의 임신이었다.
부부도 기대하지 않았던 임신소식에 너무나 기뻐하면서 오소마츠가 행운을 불러왔다고 말했지만, 오소마츠는 언제나 불안에 시달렸다. 고아원에 있으면서 친자가 생겨 다시 입양이 취소되어 돌아온 경우를 몇 번 본적있는 오소마츠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윽고 11살이나 어린 동생, 쵸로마츠가 태어나자 오소마츠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형으로, 아들로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동생에게 친절하고, 공부도 우수한, 어딜봐도 빠지질 않는 훌륭한 아들.
그런 만들어진 삶을 살면서 오소마츠는 언제나 지쳐갔다.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괴롭기만했다. 삶이라는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그런 오소마츠의 지지대가 된 것은 마츠노 부부가 아니라 어린 쵸로마츠였다. “형”이라고 부르면서 누구보다 신뢰어린 눈동자를 보여주는 동생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드디어 가족이 되었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부터 남자의 눈을 하게 된 쵸로마츠가 오소마츠는 낯설었다. 그리고 그런 쵸로마츠에게 가슴이 뛰는 자신이 싫었다. 쵸로마츠는 가족이었다. 아니, 가족이어야만 했다. 쵸로마츠에게 처음으로 고백을 받았을 때, 오소마츠는 기쁘면서 괴로웠다.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누구보다 증오스럽고,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쵸로마츠.
하지만 그 고백보다 더 먼저 생각해버린 것은 가족의 굴레였다. 그토록 바래고 바래왔던 가족은 쵸로마츠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순간 붕괴해버릴터. 그랬기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의 고백을 받아들일수도,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그 괴로움에 종종 눈물이 흘렀다. 자신으로 인해 광기를 띄어가는 쵸로마츠에게 언제나 미안했다. 종종 부모님이 없는 날이면 제 입술을 탐하는 어린 동생의 손길을, 오소마츠는 거절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존재를 거부할 수 있을리 없었다.
동생의 명령에 입을 벌리며 오소마츠는 그 달콤함에 신음했고, 배덕감에 몸을 떨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형...”
언제나처럼 키스 후 마치 주문이라도 외우듯 속삭여오는 목소리에 오소마츠가 답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소식은 아카츠카구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마츠노가의 여섯 쌍둥이는 지나치게 유명 인사였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토토코의 머릿속에 떠오른것은 여섯 쌍둥이의 장남, 마츠노 오소마츠였다.
언제나 능글맞게 웃으면서, 강한듯, 자유롭고 제멋대로에 어찌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쓰레기 니트. 경마와 도박이나 즐기는 말종.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바보.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장남.
“울고, 있을까?”
혼자 중얼거린 토토코는 살래살래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소마츠가 운다니. 제멋대로인 그 남자는 결코 울지 않을거다.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더라도 마츠노가의 장남은 울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불안해졌다. 차라리 울어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타입이라면 걱정도 없지만, 그는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자기 자신으로 숨어드는 남자였다.
“정말.. 날 이렇게 걱정하게 만든 오소마츠군이 나쁘다니까.”
작게 투덜거리면서 마츠노가로 향한 토토코는 지붕위에 앉은 남자, 마츠노 오소마츠를 보고 순간 할말을 잃었다. 붉은 석양, 그 속에 파묻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같이 흐릿한 붉은 파카의 남자 따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마츠노 오소마츠는 언제나 밝고 생명력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지, 저렇게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마냥 존재감이 옅은 남자가 아니었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바보구나, 오소마츠군.
당장이라도 튀어나갈것같은 말을 억제하면서 토토코는 언제나처럼 그를 불렀다.
“오소마츠군. 데이트하지 않을래?”
그 말에 멍하니 지붕에 앉아있던 오소마츠의 시선이 그녀를 잠시 향했다.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마치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동자. 무서울만큼 고요한 무표정.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조용히 뒤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던 그녀의 입가에 쓴 웃음이 걸렸다.
아아, 진짜, 마츠노 오소마츠구나.
너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조금 낯설면서도 기뻤다. 지금 이 집에 있는게 마츠노가의 장남 ‘오소마츠형’ 이 아니라 그 안에서 고요히 잠들어있던 진짜 ‘마츠노 오소마츠’라면, 마츠노 가 여섯 쌍둥이의 아이돌 토토코로 있을 필요는 없었다.
다음날 깨끗하게 옷을 차려입은 토토코는 마츠노가로 찾아갔다.
“어머, 토토코쨩?”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오소마츠군, 있나요?”
“이층에 있단다. 찾아와서 고맙구나.”
“아니요.”
가볍게 마츠요에게 인사를 한 토토코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멍하니 창가에 앉아서 형제들의 파카를 끌어안고 있는 오소마츠.
"오소마츠군."
“....토토코쨩.”
한동안 창만 바라보던 오소마츠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토토코를 응시했다. 평상시의 장난끼도, 경박함도 모두 내려놓은 고요하고 허망한 눈동자. 토토코는 오소마츠의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가 멋있다고 생각해버린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오소마츠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그 올곧고 바른 시선을 먼저 피해버린 것은 오소마츠였다.
여전히 의문을 품은 눈동자는, 곤란한 듯 옅게 지어진 미소는, 여섯 쌍둥이의 장남다운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참으로 좋아하던, 그리고 좋아하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나 말야, 중학교 때 오소마츠군을 좋아했어요.”
“나, 그거 금시초문인데??”
혼란에 빠진 오소마츠를 바라보면서 토토코는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왔던 솔찍함을 꺼내놓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는 마츠노 오소마츠였다. 마츠노가의 장남으로, 자신을 숨기는데 너무나 익숙한 남자. 이 남자에게 변화구는 통하지 않아. 확실한 돌직구만이 답이었다.
“말한 적 없으니까. 나 그 때 이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오소마츠군,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남동생들밖에 없었는걸. 어떤 여자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첫 번째이고 싶지, 두 번째이고 싶은 여자는 없어요.”
곤란한 듯 혼란스러운 표정의 오소마츠를 보면서 자신의 사랑을 자각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 토토코는 괴롭게 웃었다. 사랑을 깨달음과 동시에 결코 이 남자에게 있어서 자신은 가족보다 우선 순위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의 절망감.
중학교때의 오소마츠는 꽤나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성적은 별로더라도 요령이 좋고, 손재주가 좋아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도 많았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인데다가 운동신경도 좋아서 나름대로 우상 비슷하게 불리기도 했다. 게다가 외모도 적당한 호감형에 늘 밝게 웃는 모습은 사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토토코 또한 자연스럽게 오소마츠를 좋아하게 되었다. 제멋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똑바로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았다. 그러나 그 마음이 깊어질수록 보이는 것은 너무나 깊고 깊어서 도무지 들어갈 수 없는 형제간의 유대. 사람의 마음이 방이라면 그 방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섯 쌍둥이 뿐. 마음속 집에 있었고, 그 이외의 사람에게는 결코 마음속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알아온 소꿉친구인 자신이나 치바타에게도 그러했다.
마츠노 오소마츠라는 남자를 알면 알수록 사랑이 깊어졌다.
그 누구보다 쉽게 웃어주면서,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는 남자.
그 누구보다 강해보이면서 사실은 너무나 약하고 연약한 남자.
그 누구보다 뻔뻔하고, 제멋대로이면서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
무신경한 것처럼 굴면서도 외로울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자상하고 상냥한 남자.
이런 남자를 좋아하려면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여선 안 된다. 그의 형제들 중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공주님이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언제라도 그의 형제들이 그를 떠날 순간을 기다렸다. 성인이라면 언젠가 그의 형제들은 그를 벗어난다.
이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남자가 혼자 남는 때 그녀는 이 남자에게 고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오소마츠군을 사랑해줄께. 난 결코 오소마츠군을 떠나지 않으니까.”
“나 누구보다 쓰레기에 니트야?”
“내가 돈을 번다면 오소마츠군이 집안일 해주겠죠?”
“....동정에 바보인데?”
“괜찮아요. 그런 면마저도 좋아하는 거니까.”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토토코를 응시했다.
“나한텐, 형제들이 우선이야.”
“아직은 그렇더라도, 앞으로도 그런다는 보장은 없는거야, 오소마츠군.”
너무나 연약해 보이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 사이 말랐는지 조금 가늘어진 몸이 힘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들어왔다.
드디어, 품에 넣었다.
“그러니까,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나, 남자인걸.”
“내가 먼저 고백했으니까.”
“사귀기도 전에 청혼이라니 너무 빠르잖아.”
“사귀는 건 싫지 않다는 거네.”
토토코의 품에서 안겨있던 오소마츠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밝고 활발한 미소는 아니지만 따스한 봄볕처럼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지은 오소마츠가 그녀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하는 몸에 히트사이클의 전조를 알아차린 오소마츠가 이를 갈았다. 꽤나 규칙적인 주기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연을 맺은 알파를 둔 오소마츠는 상당히 안정적인 오메가였으나,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문제에는 상당히 취약했다. 그리고 요 근래, 오소마츠는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기분도 안 좋은데 잘됐네."
오소마츠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장남이니까, 형이니까 억누르던 고삐를 오랫만에 풀어볼 생각이었다. 한달내내 주기적으로 먹음으로써 히트사이클을 약하게 만들고 임신을 방지하는 사이클 방지제를 입안에 넣은 오소마츠는 적당히 시간을 확인 후 거실로 내려갔다. 슬슬 동생들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쇼파에 앉아서 책을 보던 오소마츠는 잠시 후 문이 얼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즐겁게 웃으며 돌아온 삼남, 사남, 오남, 육남이 있었다.
이야, 기분도 안좋은데 심지어 알파새끼가 없다라.
삽시간에 내려가는 서늘한 온도를 깨달은 동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오소, 마츠형?" "인사는?" 『다녀왔습니다.』 "형, 화난거야?"
이치마츠의 물음에 더더욱 서늘한 미소를 짓는 오소마츠의 모습에서 그들은 오소마츠에게 히트사이클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평상시에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오소마츠였지만, 그 반동일까, 히트사이클때의 오소마츠는 접근하는게 무서울만큼 흉악했다. 꽤나 주기적인만큼 아직 히트사이클시기가 아닌데도 히트사이클로 예민해진 오소마츠의 모습에서 요근래 형의 모습이 뭔가 불편해보였음을 기억해낸 쵸로마츠가 살짝 이치마츠에게 눈짓했다.
"우, 우리 먼저 올라가도될까, 형?" "아아. 좋아."
사남 이하 동생들이 사라진것을 확인한 쵸로마츠가 조심스럽게 오소마츠를 바라봤다. 이정도로 예민해져서 기분이 가라앉은 오소마츠는 오랜만이라 절로 떨리는 몸을 억제하면서 쵸로마츠는 간신히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일이 있는건데?" "아무것도 아니야. 내 알파새끼가 맘대로 다른 오메가새끼랑 이야기하고 다니는거야, 뭐, 상냥한 이 장남이 봐줘야겠지. 그런데 다른 오메가 냄새까지 풍기면 내가 좀, 불쾌하지 않겠어? 그렇지, 쵸로마츠?"
입가는 생글생글. 그런데 그 눈은 당장이라도 그 알파새끼, 차남 카라마츠를 죽일 것 같이 싸늘했다. 눈 깊은 곳에서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오소마츠의 모습에 쵸로마츠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물론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두고 바람을 피울만큼 요령이 좋은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 오소마츠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쉬운 일이던가. 알파든 오메가든 서로가 서로에게 각인 된 경우 어찌할 수 없는 소유욕을 지닐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최근 카라마츠에게서 풍기는 오메가 냄새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형, 적당히.." "다녀왔습니다. 어? 형님??"
어찌 저리도 눈치가 없나.
그야말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장작을 지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와, 카라마츠. 오늘 이 형님이랑 얘기 좀 할까?"
카라마츠가 이렇게 일찍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피했을텐데, 하필이면 피할 타이밍도 놓쳐버린 쵸로마츠는 스스로의 운 없음에 한탄했다. 사랑싸움 + 형제싸움에 피하는 것은 실패했으니, 끼어들지는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쵸로마츠는 거실 구석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오늘의 난 망부석이올시다.
"이야. 오늘은 오메가냄새가 더하네. 응?" "아아. 사랑스러운 카라마츠걸이 오늘 아파서 부축해줘서 말이지. 아아, 역시 난 죄많은 남자인게지. 근데 왜 이리 화가난건가, 오소마츠형님?"
자신의 잘못은 모르는 것처럼 의아한 표정을 짓는 카라마츠의 모습에 오소마츠는 무척이나 즐겁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내용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형님은 놔두고 다른 오메가새끼랑 가깝게 지낸다는거네."
베실베실 웃으며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갔다. 아무렇지않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멱살을 잡아 챈 오소마츠가 다른쪽 손으로 주먹을 쥐고 카라마츠의 복부를 강타했다.
퍼억-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리고, 지독한 통증에 순간 휘청거리는 카라마츠의 멱살을 제 쪽으로 당긴 오소마츠가 처음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상냥한 얼굴로 카라마츠를 바라봤다.
"크으. 혀, 형님?" "넌 내 알파고, 그럼 당연히 다른 오메가 새끼랑 가깝게 지내면 안되지. 응?" "그, 그게.." "넌 내가 다른 알파놈이랑 가깝게 지내면 좋을것같아? 다른 알파놈의 냄새 풀풀 풍기면서?"
그 튼튼한 카라마츠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걸 알면서도 싸늘히 웃으며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더 무서웠다. 카라마츠도 이렇게 화난 오소마츠는 너무 오랜만이라 적응조차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누가봐도 오소마츠가 알파에 카라마츠가 오메가로 보이는 커플인데, 사실 그 성별은 반대라니, 세상은 알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쵸로마츠는 다시금 오소마츠에게 함부로 덤비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너도 생각하면 불쾌하지?" "내가 생각이 짧았다, 형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
순간 울컥한 표정을 지은 카라마츠가 오소마츠에게 사과했다. 그런 카라마츠의 대답에 그럭저럭 만족한 듯 오소마츠가 옅게 웃으며 카라마츠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츄-
"그래야지. 이 횽아 발정기 왔는데, 이렇게 내버려 둘 생각?" "...나가지."
방금전까지의 흉악한 분위기는 어디로 팔아먹고 살랑살랑 봄바람마냥 웃으며 카라마츠를 유혹하는 오소마츠와 그런 오소마츠의 표정에 방금전까지 당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알파다운 표정으로 오소마츠를 끌어안은 카라마츠가 밖으로 나갔다. 비로소 평온해진 공기에 쵸로마츠의 얼굴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