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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잔뜩 쉰 목소리가 울렸다. 언제나 힘없이 쳐진 목소리가 아닌, 강한 힘이 내재된 목소리. 그와 동시에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렸다. 계속해서 흐려지는 눈을 닦아내며 단 한순간이라도 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 명훈을 보며 윤택이 힘들게 손을 뻗었다.





"사랑해,, 정말, 널,,, 사랑,,, 해,,,,"





삐-



힘겹게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점점 느려지더니 툭- 떨어져내렸다. 급박하게 쥔 손은 점점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혀, 형.. 형? 윤택형.. 형, 정신 차려봐요.. 형. 형!!!"





급박하게 너스콜을 누르자 달려온 간호사는 당황하며 밖으로 나갔다. 가슴이 먹먹하고, 당장이라도 심장이 부서질것마냥 지독히 아팠다.


사랑. 형이 말하던 사랑. 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픈 기분이 사랑이려면, 나는 형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잠시 병실을 비웠던 윤택의 부모님과 승일, 광선이 급박하게 달려왔다. 더이상 그래프를 그리지않는 기계의 차가운 소리에, 윤택의 손을 잡은채 꺽꺽거리며 우는 명훈의 모습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이별이었다.






[윤택명훈] 시간을 걷다 01






"으..."





간신히 정신이 든 명훈은 아무도 없자 두려움에 파르르 떨었다.





"승일, 형? 광선아... 다, 어디,, ,어디, 있어...?"





좁고 더러운 단칸방에 널린 옷가지 몇 개와 손때묻은 악기 몇 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모습에 명훈의 몸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흐으 , 흑.. 혀, 형... 광선아... 으흑,"





달칵-


몸을 잔뜩 웅크린채 울먹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들려오는 명훈의 울음소리에 급박하게 달려온 것은 승일이었다. 비닐봉지는 한곳에 내팽겨쳐둔채 명훈을 끌어안은 승일이 속삭였다.





"명훈아. 명훈아? 형, 여기있어. 광선이도 곧 올꺼야."
"흐, 혀, .. 혀엉... 으흐..."





윤 택의 죽음이후 폐쇠된 공간과 병원, 어둠과 아무도 없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된 명훈을 잠시라곤해도 홀로 놔둔 자신이 바보같았다, 한숨쉰 승일이 두려움에 떨다 기절하듯 잠든 명훈을 옆에 고이 뉘었다. 승일의 허벅지를 벤 채 잠이든 명훈을 응시하던 승일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녀왔, 어?"
"왔냐? 명훈이, 깨서 떨고있더라."
"한명은 남아있을걸.. 잘못했네요."





승일의 말에 낮게 한숨을 내쉰 광선이 식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정리한 뒤 승일의 옆에 다가왔다.





"어디, 공연갈만한 곳 없어요?"
"글쎄.. 찾아봐야지. 힘드네."





그토록 사랑하고, 원하고, 바란 음악이었지만 그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그것은 윤택의 죽음 이후 더했는데, 그야말로 하루벌어 하루 먹고산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정도였다.





"정말.. 힘들다..."





광선은 승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이번에 광주에서 공연이 생겼어."
"광주요?"
"괜찮은 곳이야. 어때?"
"찬성!"





승일의 말에 명훈이 제일 먼저 웃으며 찬성을 표했다. 자신때문에 승일과 광선을 힘들게 하고싶진 않았고, 어떻게해서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다.





"광선이, 넌?"
"저도 괜찮은것같아요."
"그럼 결정. 오늘 저녁에 가야되니까 준비해."





이것으로 다시 힘을 내자.


승일은 그리 생각하며 웃었다.



힘들어도 우린 함께니까, 괜찮을테니까.






---






빠앙-



귓가를 어지럽히는 시끄러운 소리. 매캐하게 고무가 타는 냄새. 시야를 가득 메우는 불빛.


그것이 명훈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어두운 밤, 광주의 공연을 위해 내려가던 그들을 덮친 거대한 트럭. 그들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채 도로에서 가드레일 밑으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모든것을 잃었다.





진짜, 지독히도 억울하고 원통했다.





그것이 마지막 생각이었다.







*



*









그리고,





"명훈아? 왜 그래?"
"뭐, 나쁜 꿈이라도 꾼거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윤택과 승일, 광선을 보고 명훈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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