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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선택을 한거야?"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를 원망스레보는 명훈의 시선을 한참이나 외면하던 윤택이 결국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나보다. 능력보다 혈통이 중시되는, 그런 현실이."
"바꿔보겠다는게 이런식의 반란이라면, 참으로 못난 사람이야."




명훈의 말에 윤택은 그저 힘없이 웃었다.




"응. 못났지. 참으로 어리석고도, 못난 사내야."







[김명훈 100제] 015. 그리움







"아버님. 또 어찌하여 찬바람을 쐬시는 겝니까?"




점점 바람이 차가워지는 시기에 한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명훈의 모습에 아들 현택이 걱정스러운 듯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을 그리운 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명훈의 얼굴에 괴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참으로 그립고, 그리운 이가 떠올라서 말이다. 내 바보같은 원망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해가 되느니라."
"아버님..."
"선왕께서 작고(作故)하신후에 선왕의 비께서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신하된자로서 어찌 왕실의 결정에 이의를 표하겠습니까?"




그런 현택의 강직한 모습은 어찌 이리도 자신을 닮은것인지. 명훈은 그저 쓰게 웃으며 어느덧 제 자신보다 커진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작년에 즉위하신 주상폐하의 춘추가 고작해야 8살이었느니라. 즉 왕실의 최고 어른이신 대왕대비마마께서 중심을 잡으셔야 하거늘, 현재의 조선을 보거라. 그저 우리의 집안만을 우선시 하시는 이 모습을. 많은 선비들이 제대로 된 기회조차 잡지못한채 우리 가문을 손가락질 하고 있단다. 이런 분위기에 넌 휩쓸리지 말거라."




지천명(知天命 : 50세의 나이를 이르는 말)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은 아버님의 강직함에 현택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버지인 명훈은 현택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만 들어가는것이 좋을것같습니다, 아버님."




계속되는 현택의 재촉에 결국 집으로 들어가 몸을 누인 명훈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지난 23년의 세월을 그야말로 생지옥, 그 이상이었다.


부 모님께는 다정한 아들이었으며, 조정에서는 성실한 신하, 지어미에게는 착실한 지아비였으나 그 마음만은 언제나 차갑게 식어있었다. 젊었을 적 반란군이 되어 만나버린 임윤택, 그에게 다 몸도, 마음도 묶여버린 명훈에게 있어 삶은 더이상 삶이 아니었다. 수십번 죽고싶은 마음을 새기고, 수차례 죽음을 꿈꾸어도, 자신을 살려버린 윤택의 그 마음탓에 차마 죽지못해 살았다. 제 나이에 맞지않게 하얗게 새어버린 흰 머리는 그런 고통의 발로였다. 그나마 명훈이 제 마음을 모두 준 단 하나의 희망은 윤택을 너무도 닮은 하나뿐인 아들 현택이었다.


까무룩- 기절하듯 잠든 명훈의 얼굴을 괴롭게 일그러져있었다.






---






"명훈아."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다정하고도 친절한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상냥하고 다정한 그 모습, 그대로 윤택은 서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이, 잔뜩 주름진 그 얼굴이 윤택에게 가까워질수록 마치 시간을 되돌리듯 변해갔다. 눈앞에 보이는 윤택이, 지금 자신의 모습이 현실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성님."
"보고싶었다. 정말 미치도록 널 기다렸어."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온 명훈의 일그러진 얼굴에 윤택이 상냥하게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며 제 품으로 끌어들였다.




"장하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간, 잘 버텼어."
"아아..."
"이제, 같이 가자. 널 놓치지 않으마."




같이가도 되는것이겠지?


그나마 남은 제 애정을 모조리 쏟아부운 현택이 생각나 잠시 멈칫하며 윤택을 바라보자 윤택이 다정하게 웃어보였다.




"걱정말아라. 네 아들이야. 넌 네 아들을 그리 못믿느냐?"
"하지만..."
"이제, 그 아이도 제 갈길을 가야지. 넌 그동안 고생했어. 그러니 이제 편히 쉬어도 괜찮다. 그동안은 네 아들이 널 지켰으니, 이젠 내가 널 지켜주마."




나직하게 속삭이는 윤택의 말에 명훈은 결심을 굳히고는 윤택을 바라봤다. 윤택은 그저 손을 뻗은채 명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손을 잡는다면 다신 현실로 돌아가지 못함을 알지만...





명훈은 윤택의 손을 잡았다.







----







"아버님."




보 통 이른시간에 일어나는 명훈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것이 이상해 들어온 현택은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채 있는 모습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채 다가갔다. 늘 괴로워하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던 분이라 기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낀것은 잠시 후였다.




"아...버님?"




전혀 가슴팍의 이불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에 당황하여 다가간 현택의 눈에 보인것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명훈의 모습이었다.




기어이 힘들고 괴롭던 삶의 끈을 놓아버린 명훈의 모습에 현택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부디, 행복하세요, 아버님."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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