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미안해. 하지만 나, 당신 옆에 있을 수 없어.”


몇 번째 헤어짐일까? 윤택은 멀어져가는 여자를 보며 담담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친절하고 배려심 깊은 윤택이건만 어찌된 것인지 연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고작해야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남짓. 그것도 모두 상대방의 거절이었고, 게다가 하는 말 또한 똑같았다. 당신 옆에 있을 수 없다. 당신은 날 바라보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윤택은 알 수 없었다.




[윤택명훈] 열정 01




“축하한다, 임윤택. 몇 번째 차이는거냐?”
“몰라.”


자신을 놀려먹는 영진의 목소리에 담담하게 답하며 윤택은 술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윤택을 바라보던 영진은 들리지 않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 택은 좋은 녀석이었다. 친절하고 다정하며, 배려심 넘치는 멋진 남자. 허나 그럼 뭘 하는가? 윤택은 인간관계에 있어 이상할정도로 담담하고 냉정하게 반응했다. 윤택의 친절은 하나의 벽을 두고 있었다. 어느 정도까지는 다가가기 쉽지만, 그 이상의 허용은 하지 않는 냉혹함. 윤택의 벽을 넘어간 이는 극 소수였고, 그 중의 한명이 자신이었고, 울랄라크루 중 울랄라세션이라 이름붙인 팀원들. 그 외엔 가족밖에 없었다. 여자들 또한 사귀며 그런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그랬기에 잔혹한 다정함을 지닌 윤택을 원망하며 결국 멀어져버린다. 아마 윤택도 어렴풋이 깨닫고는 있을 터였다.


“넌 정말 어려운 녀석이야.”
“나도 알아.”


윤 택은 방금 전 헤어진 사람답지 않게 아무런 감정 없이 중얼거린 뒤 피식 웃었다. 사랑이라. 그다지 믿기지 않는 소리로군. 앞에서 술을 마시는 영진을 보자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은 윤택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에겐 사랑이라 칭하는 그 감정놀음보다 음악이 중요했고, 춤이 훨씬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울랄라세션의 맴버인 승일, 명훈, 광선이 자신의 안으로 다가온 것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기에. 윤택은 자신이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넌 너무 인간관계가 삭막해. 사실 난 네가 걱정스럽다. 임윤택. 넌 타인에게 너무 무관심해. 네 세계엔 너 밖에 없어. 그걸 알기에 난 두렵다. 언젠가 네가 떠나버릴까봐.”


진지하게 말을 건네는 영진의 모습에 윤택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도 내가 두려운데, 너라고 별 수 없겠지. 윤택은 영진이 건네는 그 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음악이 있고, 춤이 있는 한 그럴일 없을꺼다.”
“우리의 옆에 있는다는 소린 안하지?”


윤택은 아무런 대답 없이 술을 마셨다. 내가 답할 수 없는 물음은 던지지마.



---



“윤택형-!!”


명 훈이 환하게 웃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윤택의 옆으로 다가왔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녀석은 귀여웠다. 곱게 휘어지 눈꼬리도, 얼굴에 환하게 띄워진 미소도,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도 모두.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는 아저씨인 녀석이 이리 귀여워서야 원. 울랄라세션의 맴버들은 윤택 저와 비슷한 성향이었다.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홀로 선 녀석들. 다만, 이 녀석들은 저보단 훨씬 관대하고-

인간적이었다.


“어제 술 많이 마셨다고 군조형이 그러던데?”
“쓸모없는 소리를 내뱉었잖아, 그 녀석. 그렇게 많이 안마셨으니까 걱정 말고 연습이나 하러가자.”


녀 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연습실로 들어가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음을 맞춰보던 광선도, 혼자서 뭔가를 고민하는 듯 악보를 들고 끙끙거리던 승일도 환히 웃으며 윤택을 맞이했다.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다정한 녀석들이라 약간은 곤란하다 생각하는 윤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윤택을 보자마자 바로 입을 열었다.


“형, 어제 술 많이 잡수셨다면서요?”
“얼마나 마시셨기에 군조형이 그렇게 걱정하시는거에요?”
“그리 걱정할 만큼은 아니니까 괜찮아. 야, 살다보면 술도 마시고 그러는거지, 뭐.”


아 무렇지 않은 듯 답하는 윤택의 모습에 조금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면서도 녀석들은 포기한 듯 자리로 걸어갔다. 영진이 녀석, 한 번도 자신을 잃을 만큼 마셔본 적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저리 걱정이 심했다. 요새 속이 조금 안 좋다는 얘기를 한 탓인지도 몰랐다. 하여간 영진의 앞에서는 말도 조심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윤택이 동생들과 음악에 대한 상의를 시작했다. 저에게 엄격한 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성격과 완벽주의자적 성향을 지닌 윤택 덕에 가볍게 시작된 상의는 생각이상으로 본격적인 것이 되어있었다. 겨우 2시간 가까운 긴 시간의 상의의 탈을 쓴 회의를 마친 그들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축 늘어졌다.


“진짜, 윤택형 체력도 좋지. 진짜 형의 저 완벽주의적 성격은 좀 지나치지 않아요?”


광 선이 아직도 악보를 보고 있는 윤택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제일 젊은 자신보다 훨씬 팔팔해 보이는 모습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그런 광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승일과 그런 힘조차 없는 듯 대답 없이 늘어진 명훈의 모습을 바라본 윤택이 피식 웃었다. 말들은 그리해도 실제 불만은 없다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어중간한 것보다는 낫지. 이제 끝났으니까-"


윤택이 웃으며 맴버들을 응시하자 가장 밝고 활달한 명훈이 눈을 빛내며 윤택을 응시했다.


"고기나 먹으러갈까?"
"찬성!!"
"저도요."
"나도~"


윤택의 말에 혹여나 말을 바꿀까 곧바로 튀어나오는 대답에 윤택이 웃었다. 아아- 내 옆에서 너희들이 웃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있고, 가장 좋아하는 춤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따윈 필요치않아.



-



"별거 아니래요, 형."


홀 로 결과를 기다리던 윤택은 붉게 변한 눈가와 가라앉은 목소리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승일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비밀을 감추려해도 승일은 얼굴에 잘 드러나는 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문제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불러 이야기한다는 패턴은 너무나 뻔했다.


"야. 그런 표정이면 누가 봐도 암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식으로 던진 저의 그 말에 다시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바라보며 암담함을 느꼈다. 아니길 빌었는데 결국 나쁜 예감은 사실이 되어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타인에게 무심했던 벌을 받는가보다. 나는 괜찮은데, 내게 있어 죽음은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질 않는데, 나보다 아파하고, 나로 인해 상처입을 너희들을 생각하니 괴롭다.




[윤택명훈] 열정 02




윤 택의 소식을 들은 광선은 믿기지 않는듯 아닐거라고 절규하며 울었다. 승일은 그런 광선을 바라보며 같이 울었다. 허나, 명훈은 울지 않았다. 그들의 연습실이 눈물바다가 되어버렸음에도, 평상시의 풍부한 감정표현과는 달리 그저 입술만을 깨물뿐, 놀라울만큼 담담하고 서늘한 표정으로 그저 듣고, 그들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윤택이 병원에서 돌아왔을때에도 승일과 광선의 울음을 달래고, 분명 괜찮아 질것이라 그리 담담히 말했다. 광선이 그런 명훈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듯 화를 내며 소리쳤다. "형은 윤택형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냉정할수 있어!!"라며.

언제나처럼 연습실에 나타나,
언제나처럼 연습을 하고,
언제나처럼 집으로 향하고,

광선은 그런 명훈을 보며 화를 냈다. 종래에는 "저렇게 냉정한 사람일줄 몰랐다."며 그리 실망한 말투로 명훈을 외면했다. 승일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명훈에게 내심 서운해지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질꺼에요, 윤택형."


명 훈은 그저 윤택에게 그 한마디만을 건넸을뿐, 다른 행동은 전혀 하지않는것처럼 보였다. 그 직후 윤택은 항암치료를 위해 연습실에 나타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리 윤택이 없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날 무렵 겉으로는 괜찮아보이던 명훈의 이상을 알아챈것은 승일이었다.
명훈은 원래 마른녀석이었다. 원래 마른 체질인데다가 입도 짧고, 소식을 하는탓에 명훈의 몸무게는 언제나 50대 초반을 유지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지금의 명훈은 마치 쓰러져버릴것처럼, 병적으로 말라있었다.


"야! 김명훈. 잠깐 애기 좀 하자."
"읏- 형, 아파요."


승일이 잡아챈 팔을 빼내며 작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명훈이 항의했지만 승일은 그것에 신경쓸 수 없었다. 그 손에 잡힌 명훈의 팔은 그야말로 뼈밖에 없다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말라있었다.


"형? 저 가봐야되서 미안해요."
"아니, 저-"
"죄송해요. 내일 얘기해요."


명훈이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달려나가버리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광선이 승일에게 다가왔다.


"왜 그리 넋을 놓고 있어요, 형?"
"명훈이, 원래 저렇게 말라있었나?"
"원래 마른 사람이잖아요."


광선은 아직 명훈에 대한 섭섭함이 풀리지 않은 듯 퉁명스레 답했지만, 승일은 그런 광선을 보면서도 명훈에 대한 걱정을 버릴 수 없었다.


"김명훈, 너.. 어떻게 된거야?"


그 정많고, 다정한 녀석이 이상하리만치 냉정하게 구는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승일은 윤택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명훈에 대한 걱정으로 낮게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근래 윤택이 입원한 뒤로는 연습을 마치자마자 일분일초가 급한것마냥 급박하게 나가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원망스러운 기분이 드는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



거의 열흘만에 병원에서 돌아온 윤택은 아무렇지않게 웃으며 들어왔다. 언제나 기르고있던 머리카락을 완전히 다 밀어버린 모습이었지만, 그런 모습조차 눈물나게 반가운 기분이었다. 광선 또한 윤택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다 밀어버린탓에 왠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며 승일은 명훈을 바라봤다. 윤택 이상으로 초췌해진 명훈은 그런 윤택을 보며 힘없이 옅게 웃고있었다.


"야, 박광선. 너 진짜 안 어울린다. 그러니까 그냥 다시 길러라."
"네?!!"


아무렇지않은 표정으로 말하며 웃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윤택의 모습에서 안도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윤택은 울랄라세션의 중심이고, 그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으니까.
연습을 끝내고 한명한명의 단점을 지적하는 모습조차 그대로라 윤택이 암이라는 사실이 마치 지독한 거짓말같았다.


"마지막으로, 김명훈. 너 노래에 힘이 너무 없다. 너 자신도 느끼고 있지? 네 맘에 안드는 노래는 다른 사람이 듣기에도 좋지 않다는거 네가 더 잘알거라 믿는다. 게다가 호흡도 조금 부족하니까 그것만 주의하도록!"
"네."


윤택이 명훈에게 지적한것은 승일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여전히 명훈의 노래는 훌륭했지만 언제나 꽉 차있는듯한 그런 느낌이 부족했다.


"자- 그럼 해산."




-



윤 택의 재입원이후 근 일주일만에 병실에 찾아온 승일은 안에서 낮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얇고 가는 미성은 분명 윤택의 음성은 아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본 승일은 바보같은 원망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I have a dream, a song to sing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If you see the wonder of a fairy tale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




고요한 병실에서 명훈의 무릎을 베고 잠든 윤택과 조용히 눈을 감은채 노래를 부르는 명훈의 모습이 지나치도록 서글퍼서, 안타까울만큼 사랑스러워서, 승일은 그저 문에 기댄체 눈물만 흘렸다.






[윤택명훈] 열정 03






윤 택에게 입원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지금껏 살도록 입원할만큼 심하게 아팠던적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독한 아픔이라던가 그런것이 없었기에 윤택에게 암이라는 병명이 실감이 나지 않는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윤택 자신이 지닌 죽음에 대한 개념이 타인과는 전혀 다른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우는건 조금 많이 괴로웠어."




윤 택이 암이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 마치 제 자신이 암에 걸린것마냥 서럽게 울던 광선과 그저 저를 바라보며 눈물만 뚝뚝 흘리던 승일, 아무렇지 않은듯 말을 꺼냈지만 입술을 깨무던 명훈의 모습이 기억나 윤택은 조금 가슴이 아팠다. 타인에게 아무리 냉담한 윤택이라고는 하지만 그들과의 세월이 벌써 15년이었다. 윤택일지라도 그들에게 소중한 감정이 싹튼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벌써 사흘째인가? 정말 지나치게 한가한데.."




언 제나 하루가 모자를만큼 의욕적인 생활을 하던 윤택에게 있어 그저 병원이라는 공간에 갇혀있어야하는 생활은 그야말로 창살없는 감옥과 마찬가지인지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다른 맴버들을 부르기에는 사흘전 입원하던 날 찾아와 울던 광선과 승일의 모습이 맘에 걸려 차마 부를수가 없었다. 게다가 명훈은 사흘째 전혀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섭섭함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소식을 듣는 순간 괴로움에 일그러지던 명훈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드는탓에 약간은 안도도 같이 드는것은 자신이 어리석은 탓이겠지.



똑- 똑-



느리고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렸다. 잘못하면 놓칠만큼 작고 미약한.




"네. 들어오세요."
"혀엉- 죄송해요."




문 이 살짝 열리고 들어온것은 추위에 붉게 상기된 명훈이었다. 사흘동안 지독하게 마음앓이를 한 듯 그새 마른 모습의 명훈에게서 미약한 술냄새가 풍기기는 했지만 그리 많이 마신것은 아닌듯했다. 명훈은 조심스럽게 윤택의 침대옆으로 다가와 앉아 침대에 엎드렸다. 밖의 서늘한 공기로 인해 완전히 식어버린듯 명훈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추울지경이었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든 윤택이 손을 뻗어 명훈의 손을 쥐었다. 사내녀석치고는 작은 손은 윤택의 손에 쏙들어왔다. 작고 마른터라 안타까운 녀석이 이 추운 날 어딜 이리 쏘다니는건지. 괜스레 울컥한 윤택이 저답지않게 명훈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러뜨렸다.




"임마- 노래부르는 녀석이 이렇게 추운 날씨에 술마시고 돌아다니면 못써! 안그래도 목에 부담가는 부분만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절제가 뛰어난 명훈이 이리 흐트러진 이유가 저라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좀 더 차갑게나간 제 말에 홀로 당황하고 있을때 쯤, 엎드려있던 명훈이 약간 풀린 눈으로 윤택을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혀엉- 자신이 무지- 냉정하고 차가운 사람인거- 알아요?"




느릿하게 웅얼거리는 명훈의 그말에 심장이 철렁한것은 윤택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어째서 이토록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껏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여자들과 같은 말인데 이토록 윤택을 흔든것은 명훈이 유일했다.




"형은- 언젠가 우릴- 떠날꺼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어딘가 한 발자국 물러선 눈으로- 우릴 마치 관찰하듯이-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명 훈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명훈이 하는 얘기는 스스로가 느끼고 있던 진실이니까. 언제나 자신은 울랄라세션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냉정한 눈으로 방관하듯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영진도 말하곤했다. 우리들 옆에 있는다는 소린 절대 안한다고. 넌 지독하게 냉정한 녀석이라고.




"있죠- 사람들이 말하길-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은- 실은-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게 맞아요. 형은 사실은- 너무 냉정해. 그래서-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요."




윤택은 아무런 대답없이 고요한 눈으로 명훈을 응시했다. 그런 모습에 명훈의 맑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않은채 올곧게 윤택을 응시했다.




"근데- 이건 아니에요. 이렇게- 이런식으로- 떠나버리는거- 그건- 아니에요. 형- 가지마요. 나- 형한테 원망- 안할께요. 그러니까... 우리 버리지마요- 흐윽-"




결 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던 명훈이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순진한 눈망울에 눈물이 일렁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윤택이 손을 뻗었다. 나는 네가 강하다 생각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구나. 강한것처럼 행하더니 결국 제일 약한건 너였어. 너처럼 약한 녀석을 어찌해야하니, 명훈아.




"안버려.. 버리지 않을께, 명훈아. 그러니.. 울지마라. 응? 형 아무데도 안갈께."




그 리 한참을 달래어 간신히 진정한 명훈의 붉어진 눈가가 안타까워 윤택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에도 미련도 집착도 없다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저 단순히 좋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었던 울랄라세션 맴버들이 어느순간부터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었다. 명훈의 눈물에 제 감정이 움직여버릴만큼.




"명훈아."
"...네?"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탓에 약간 가라앉은 명훈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는 생각을 하며 윤택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노래, 불러주겠니?"
"뭐... 불러드릴까요?"




윤택은 천천히 침대에 누워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명훈을 바라봤다. 정말로 미치도록 너의 노래, 너의 그 목소리가 듣고싶을때가 있다. 오늘이 그 때인듯 싶었다.




"Everytime I Close My Eyes."



"Girl it's been a long, long time comin'



But I, I know that it's been worth the wait



It feels like springtime in winter



It feels like Christmas in June



It feels like heaven has opened up



its gates for me and you



And you've hot me too"






---







명훈은 그 이후 적어도 이틀에 한 번 이상은 윤택을 찾아왔다.



맴버들에게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잡담,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병원에 갇혀있다싶은 윤택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소중한 이야기들.




"명훈아. 너 요새 좀 많이 마른것같다?"
"아아. 조금요."




웃는 모습이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훈은 아무렇지 않은듯 윤택을 보며 웃어보이곤 했다. 명훈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는터라 윤택은 차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마라."
"네."




오늘도 노래를 불러주다가 일어서는 명훈을 보며 윤택이 잠에 취한채 말하자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답하고 나가는 명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영 진아, 네가 난 너무나 타인에게 무심하다 했었지? 그런데 지금 내가 내 마음을 모르겠다. 저리 슬프고 가엽게 웃는 명훈이나 너무나 걱정스러운데 한편으론 환희로 벅차 오르는 이 감정을 난 모르겠다. 내가 내 감정에 너무나 둔감했기에, 그랬기에 이 감정을 뭐라 불러야 할 지 난 모르겠어. 현명한 너라면 나의 이 감정에 답을 내려줄 수 있을까?



-



"승일아."
"네?"




윤택은 승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동시에 승일이 아닌 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일전에.. 보고있었지?"
"아? 네..."




순 간 윤택의 말에 당황하던 승일이 난감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거라 생각했던 윤택이 알고있었다는것을 알자 왠지 민망해졌다. 노래를 부르던 명훈과 윤택의 모습은 뭔가 둘만의 세계같아서 사생활을 본것같은 기분이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승일의 모습에도 윤택은 아무런 표정없이 승일을 응시했다.




"요새 명훈이가 너무 말랐더라. 좀 지켜봐줘."
"네?"
"강한척하는데 실은 너무나 약해서, 그래서 걱정된다. 너나 광선이처럼 겉으로 드러내고 아파하는 녀석이 아니라 혼자 속으로 끙끙 앓을까봐, 그래서 저 스스로를 망칠까. 네가 좀 돌봐줘라."
"네."







[윤택명훈] 열정 04







♩♬  I don't want it wan it 널 원하지만
Don't make me falling ♬♪~


영 진도가 나가지않는 편곡작업탓에 머리를 감싸쥔 승일이 들려온 벨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Bar Ulala 」




"누구에요?"
"성현이."
"성현이 형요?"




옆에서 물어오는 광선에게 대답한 승일이 폰을 들었다. 친하긴하되 중요한일이 아니면 연락하지않는 녀석이 어쩐일인가 싶었다.




"여보세요?"
「아, 승일이형? 저 성현인데, 죄송하지만 가게에 와 주실수 있어요?」
"하? 알겠다."

갑자기 밑도끝도없는 이야기에 당황한 승일이 전화를 끊은 후 일어서자 광선이 저도 의아한듯 일어섰다. 순간 말리려했던 승일일이었지만, 어차피 상관없겠지 싶었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섰다.







---







"형!! 어? 광선이도 같이온거야? 하긴, 다행이다."




저를 보자 반색하며 반기는 성현의 모습에 승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승일의 표정에 성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하나의 방을 가리켰다.




" 미안한데, 명훈이 좀 말려봐요. 요새 거의 매일 가게에 출근이야. 저러다가 잘못될까봐 걱정이 되서 가만히 놔둘수가 있어야지. 윤택형 입원한뒤로는 한 이삼일에 한번은 와서 마시고 있어요. 처음엔 힘들어서 그런가보다했는데, 지금 벌써 열흘이 넘었는데도 저러는 모습 보니까... 저 녀석, 안 그래도 작은 녀석인데 저러는 꼴 보고있자니 내가 다 답답해."




걱정스레 한쪽 룸을 바라보는 성현의 모습에 승일과 광선의 표정이 굳었다. 승일로서는 얼마전 윤택의 병실에서 봤던 명훈의 모습이 생각나서, 광선은 지금껏 자신이 명훈에 대해 실망해서 계속 퉁명스레 대했던 제 모습이 생각나서였다.
걱 정하는 성현을 뒤로하고 벌컥 문을 열자 보이는것은 나뒹구는 소주병의 모습에 승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작해야 한 병이 한계이던 녀석이 두어병가까이 비운 모습으로 엎드린 모습이라니. 술기운에 잠든 명훈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안아올리자 놀랄만큼 가볍게 제 품으로 들어오는 메마른 체구에 승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윤택이 없으면 제 자신이 형으로서 행동해야했거늘, 자신의 슬픔에 빠져 맴버의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느껴져 승일은 고개를 떨궜다.

몰랐구나. 난 몰랐어, 명훈아. 윤택형의 병실에서 보이던 괴롭던 네 표정을 보고 알았어야했는데, 난 내 슬픔에 빠져서 몰랐어. 그래서 미안해. 네가 괜찮을리가 없었는데. 네가 아픈게 당연했는데.




"형. 우선 제 집으로 가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승일을 보며 광선이 조심스레 승일을 인도했다. "우선 명훈형을 눕히는게 먼저잖아요?"  광선의 그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승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섰다.




"아, 계산은.."
" 아이. 우리사이에 무슨 계산이에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명훈이 녀석 좀 부탁할께요. 학생때부터 제 속내 안드러내는 녀석이라 좀 무뚝뚝해보이긴해도, 사실 이 녀석만큼 착하고 정 많은 녀석도 드물거든요. 그래도 형이랑 광선이랑 있으니까, 다행이에요."
"너무 걱정하지마요, 형."
"응. 그럼 안녕히가세요. 잘가, 광선아."




걱정스레 배웅하는 성현을 뒤로하고 나온 승일과 광선은 광선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 명훈을 침대에 눕히고 나온 승일과 거실에 앉자 광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 어째서 명훈형은 괜찮은거라고 생각했던걸까요?"
"... 나도 마찬가지야. "




안그래도 가볍던 녀석이었지만, 방금전 업고올때의 명훈은 그야말로 거의 무게감이 없을정도였다.




"저, 명훈형한테.. 상처도 많이주고, 못된 소리도 많이 했는데... 형,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지 독하게 냉정하다고, 형은 울랄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거냐고, 어떻게 우리 리더의 일에 그렇게 무관심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냐고, 제가 화낼때 그저 쓴웃음만 짓던 명훈의 표정이 생각난 광선이 결국 눈물을 머금었다.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던 형이었다. 그래서 더욱 섭섭했다. 그랬는데, 저리 혼자 아파하는 줄 알았으면 그리 모질게 대하지 않았을터였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광선의 모습에 승일 또한 깊은 한숨을 머금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그러지말자. 그럼 되잖아?"
"...네. 훌쩍."




울고있는 광선을 간신히 달래 방으로 들여보낸 승일은 명훈이 누워있는 방의 침대로 다가갔다. 쏙 들어간 볼살과 퀭한 눈가. 엷은 눈물자욱이 있는 볼과 까칠한 피부가 가슴아팠다.





형. 형의 말처럼 명훈이는 너무 약하네요. 형이 걱정하던것처럼, 그리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어요. 형이나 나나 광선이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않곤 당당하게 웃더니, 저 혼자서 그리도 앓고 있었어요.

Posted by Lucy_j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