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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이 백련각(白蓮閣)으로 들어간것은 8살이었다. 부모의 고리대의 빚은 가족을 풍비박산냈고, 어렸던 명훈은 청기(靑妓 : 춤&노래만 부르는 기생)나 홍기(紅妓 : 몸을 파는 기생)를 위한 몸종으로서 백련각에 팔려왔다. 그랬던 명훈의 재능을 알아본것은 행수(行首)인 지란(智蘭)에 의해서였다. 가늘고 조그만 체구와 곱상한 외모. 사내아이 답지않은 고운 목소리. 우연히 명훈의 노랫소리를 들은 지란에 의해 명훈은 청월(淸月)이라는 기명을 받고 기생이 되었다.





"이름은 청월이라 하옵고, 저희 백련각에서 제일로 노래를 잘부르는 아이이옵니다."

"지란,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 어찌 아니 들어보겠나? 한 번 불러보거라."





명훈은 그저 낮게 눈을 내려깔며 거문고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기생 청월에게는 그 무엇도 거부할 힘이 없었다.







[윤택명훈] 기생







명훈은 백련각 후원에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재주로는 백련각, 아니 한양 제일이라곤 하나, 어차피 사내. 명훈을 경멸하는 다른 기생들이 명훈에게 말을 걸리가 전무했다. 다만 한 존재를 제외하고.





"어찌, 또 넋을 놓고있어."

"별것 아닙니다. 어찌 이 곳에 오신겝니까?"

"이틀 뒤 중요한 손님이 오실게다. 너도 익히 들어봤겠지? 좌판서이신 임대감님의 막내 자제분. 그 분께서 네 재주를 구경하고싶다 하시더구나."

"그러하옵니까?"





그저 낮게 물어오는 명훈의 음성에 행수인 지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기생팔자 더럽다만은 너만 하겠느냐?





"어쩌면, 네 머릴 얹겠다 하실지 모르겠구나."

"머릴... 얹는다?"





명 훈은 입술을 깨물며 반문했다. 제 나이 벌써 17. 계집아이의 나긋나긋한 곡선은 커녕 사내놈의 딱딱한 몸으로 변화하고 있거늘, 어찌 사내자식의 몸을 꺽어보겠다는 이가 이리도 많은가? 재주를 파는것도 모자라, 이젠 몸마저 팔아야하는 그런 신세가 되어버린겐가? 이미 몇차례나 머리를 얹어주겠다던 양반님네들을 거부해왔거늘. 하지만 명훈 자신도 잘알고 있었다. 더이상 미룰수도 없다는것을.





"제가, 사내임을 모르는 분이십니까?"

"아실게다. 백련각의 기생, 청월이 사내라는것을 모르는 한양사람도 있다더냐?"

"그렇겠지요. 알아들었습니다, 행수. 이만- 가보셔도 괜찮습니다."

"정녕 괜찮더냐?"

"제 의지따위 아무런것도 아님을 잘 아시잖습니까?"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던 지란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명훈은 그저 하늘을 응시했다. 이미 눈물따위 말라서 흐르지않은지 오래였다.





"지치는구나. 참으로,,, 지쳐."





이 창살없는 감옥에서 나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낱 새들조차 저리도 자유로운데, 어찌 자신은 원하는곳에도 못나가나? 괴롭게 한탄하는 명훈의 모습이 유난히 지쳐보였다.





-





"대단... 하군."

"한양에서 제일로 노래를 잘부른다 하였다만, 이정도일줄이야."





명훈의 노래가 끝나자 잠시 멍하니있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감탄했다. 곱고 맑은 그 미성은 그들이 예상한 것 이상이었기에.





"과찬이시옵니다."

"아니, 과찬이 아니다. 참으로 놀라운 솜씨였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젊은 사내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동조하며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명훈은 직감적으로 저 사내가 임대감댁의 막내 자제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 곳으로 오너라."

"네."





가까운 곳에서 본 사내는 헌헌장부가 따로 없음이었다. 훤칠한 외모와 훌륭한 성격. 듣자하니 뛰어난 재능과 나랏님의 총애마저 받는, 축복받은 존재. 순간 저도 모르게 칙칙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명훈은 사내에게 술을 따랐다.





"내, 임윤택이라 하니라."

"기생, 청월이옵니다."

"청월이라.. 맑은 달. 좋은 기명이로구나. 여기서는 더 이상은 묻지않으마."





윤택은 참으로 친절하고 다정했다. 기생이라하여 그저 무시하는것도 아니라 다정하게 웃기도했고, 명훈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명훈이 그리 생각한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술자리가 계속되자 점점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명훈 또한 윤택에게 이끌려 방으로 옮겨졌다. 이미 어느정도 각오한 일이었지만 두려움에 떠는 명훈을 보며 윤택이 물었다.





"내가 처음이더냐?"

"...네."





망 설이며 답한 명훈의 모습에 윤택이 낮게 웃으며 옷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분명 사내라하였건만 이 작고 가녀린 모습은 웬만한 계집 이상으로 여렸다. 저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저고리 고름을 풀어내자 보이는 뽀얀 피부. 하나하나 옷이 벗겨지며 가늘고 작은 몸이 점점 윤택의 눈앞에 드러났다. 이 아름다운 몸을 처음으로 허락한 상대가 자신이라 생각하자 치밀어오르는 정념을 견딜 수 없었던 윤택은 거칠게 명훈을 넘어뜨렸다.





"읏-!"

"네 이름이 뭐지? 기명이 아니라, 이름."

"아.. 아프옵.. 으읏!!"

".. 네 이름을 물었다."

"며.. 명훈.. 김명훈..."





거칠게 제 손목을 잡고 강요하는 윤택의 모습에 명훈은 약간 눈물이 고인 눈으로 힘들게 답했다. 두려웠다. 다정하고 착해보이던 사내가 보이는 이 격렬함이.

그런 명훈의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생각한 윤택이 다정스레 명훈의 눈물을 닦아주며 낮게 속삭였다.





"명훈이라.. 좋은 이름이로구나."

"..."

"내 이름은 임윤택이다. 기억해두거라. 네 첫남자가 될터이니."

Posted by Lucy_j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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