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2일 xx병원 vip실
"요환형."
"진호야."
울먹이는 그 눈을 보면서 진호는 쓴 웃음을 머금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눈을 감아야한다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나, 그냥, 버틸 만큼 버티다가, 형과 함께 행복하다가, 그러다가.......... 그냥 형 옆에서 있으면 안 될까? 우리 가족이랑, 형이랑 같이."
띄엄띄엄, 불분명한 발음으로 그 눈동자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진호를 바라보던 요환이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진호를
끌어안았다. 작고 앙상해진 가녀린 몸이 진호가 얼마나 약해져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요환이 진호를 보내줘야
한다는 사실도.
"난... 그리고 너희 가족은, 네가 먼 미래에 건강하게 웃으면서, 응, 그래.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평범하게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호야. 그런데, 여기선 안 돼."
"내가 괜찮다잖아."
"내가, 내가 안 돼. 형이 못났어. 그러니까 미안해. 형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니까, 이번에도 형이 제멋대로 할께."
진호는 팔에 꽂힌 주사로부터 들어오는 마취제에 점점 가물거리는 정신으로도 최대한 제 눈앞의 요환을 바라봤다.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 진호야."
점점 흐려지는 시야로 울먹이면서 끝까지 사랑을 속삭이는 요환이 있었다. 그리고 진호는 의식을 잃었다. 진호가 의식을 잃는 모습을 바라보던 요환이 간신히 억제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흐으으윽. 진호야, 진호야... 진호야...."
"진호가 이 모습 보면 좋아하지 못할 거야. 우린 웃으면서 보내줘야지."
어느새 요환의 옆으로 다가온 진호의 형, 정호가 요환이 어깨를 짚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 말하는 정호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정호형님. 저 이제 진호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죠? 제 삶의 의미인데?"
요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정호가 고요히 잠든 진호를 바라봤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진호를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잠재운다는 선택을 하는 순간까지 그토록 고민했음에도, 잠든 진호를 보니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제 하나뿐인 동생을 어찌 보내고
싶을까?
"진호는 어리광쟁이에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자주 찾아오면 되지."
요환은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진호의 손을 쥐었다. 이 작고 여린 손의 주인은 제 삶의 모든 것이었고,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홀로 외로움에 떨며 지쳐가던 요환을 구원한 진호가 얼마나 병약하고, 연약한지 알지 못했기에 늘 상처만 입혀왔다. 둔하디 둔한
자신은 그것을 뒤늦게 알고 더 이상 상처 입히지 않겠노라, 영원히 사랑하리라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는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에 의사의 멱살까지 잡으며 진호를 살려내라 오열하던 요환은 진호의 형인 정호와 길고 긴 의논
끝에 결국 진호를 냉동시키기로 했다. 그것이 아픔과 고통에 지쳐가는 진호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진호야. 네게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해줄께. 네가 언제 깨어나도 행복할 수 있도록. 이 세계가 널 사랑할 수 있도록."
++
세계를 삼등분했던 초월기업 저그, 테란, 프로토스. 그 최초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초대 테란의 황제 칭호를 얻은 임요환과 저그의
오버마인드라는 직위를 만들어낸 홍정호였다. 그들과 프로토스의 최초 집정관인 김동수, 이렇게 세 명이 가장 굳게 맹세한 혈약은 단
하나.
저그의 오버마인드 지위가 홍씨로 유지되는 한 결코 테란도, 프로토스도 저그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이 나오게 된 계기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설득력 높은 가설은 저그의 최초 오버마인드 홍정호의 유일한 동생, 냉동인간 상태로 잠든 홍진호와 관련되었다는 것으로 현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테란 최초의 황제 임요환이 그 평생 사랑한 존재.
저그 최초의 오버마인드 홍정호가 아꼈던 동생.
프로토스 최초의 집정관인 김동수가 친동생처럼 여겼다 하는 존재.
홍진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전혀 없다. 다만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세 명의 말을 조합한 결과 그가 결코 그 시대의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있었으며, 상냥하고 다정하며, 영리하고 지혜로운 존재였다라고 한다. 어느 정도 외곡과 거짓이 있을지언정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 사료된다.
2195년 『시대를 이끌어가는 초월기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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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0년 2월 22일
"옐로!! 옐로!!!! 정신 차려!!!!"
언제나 냉정하기만 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옐로는 흐려진 시야로 눈앞의 남자를 담았다. 안 그래도 흰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것이 안쓰러웠다. 천천히 손을 들어올리고, 그 뺨을 쓸어내린 옐로는 붉은 피가 묻어버린 그 뺨에 미안해졌다.
"장난치지 말고, 옐로."
"...장난은... 아닌데. ...하아... 테란의 황제가... 이리... 약해서야...."
"넌, 저그의 오버마인드잖아."
새하얗게 질린 안색과는 달리 그 말투는 평상시의 오만함 그대로였다. 하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 속으로 수긍하던 옐로는
힘없이 하늘을 바라봤다. 인공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청명하고 푸른 하늘이 조금 짜증스러웠다. 인공구역이 아닌 자연구역에 가서,
인공적인 바람이 아닌 자연바람을 쐬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옐로는 알고 있었다.
"요환아... 저그, 망가뜨리지,,, 마라."
"마지막까지 넌 오버마인드지, 홍진호."
"너도, 황제, 박서잖.. 아... 너희 테란, 눈치 보면서, 사업 확장, 하는 것, 도, 재미, 있, 었고."
힘겨운지 약해지는 그 목소리에 박서는 조금이라도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숙였다. 세계를 삼등분하는 초월기업 중 하나인
테란의 최고 정점, 황제라 불리는 존재가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고, 더더군다나 그 품에 안긴 것이 또 다른 초월기업
저그의 정점, 오버마인드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허나 박서는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서로간이 입장이 있다 보니
늘 날세워왔지만 박서도, 옐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기에.
"나, 널, 좀,, 좋아, 했, 던것, 가,,ㅌ, ㄷ...ㅏ“
‘내가, 그 분을 깨우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엷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힘없이 제 품에서 늘어지는 옐로의 모습에 박서는 그를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냉정한 표정이던 박서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널 좋아한다. 그러니 눈을 떠, 옐로. 아니, 진호야."
"..."
"황제의 명령이야. 어서 눈 떠, 옐로."
"...."
"눈 뜨라고"
그 처절한 울림에도 감겨진 옐로의 눈이 뜨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세계의 신문이며, 뉴스에는 저그의 오버마인드 옐로-홍진호의
이름이 크게 대서특필되기 시작했다. 현재 150년 이상의 수명을 지닌 세계에서 고작해야 54살에 죽음을 맞이한 것도
안타까웠지만, 그보다 큰 문제가 산적한 탓이었다.
옐로 – 홍진호
기업의 수준을 넘어 이제 세계 3대 세력인 저그의 오버마인드이자, 세계를 이끌어가는 3인 중의 하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저그에게 남은 마지막 홍씨 후계자였다는 것이었다. 최초로 3기업이 생겨날 때부터 있던 규칙.
- 저그의 오버마인드가 홍씨인 한 결코 직접적인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
프로토스와 테란, 저그라는 아슬아슬한 체제에서도 큰 잡음 없이 정상일 수 있었던 것은 저 규칙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홍씨 성을 지닌 마지막 후계자 옐로의 죽음은 그야말로 세계의 체제조차 바꿀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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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병원 냉동인간 보관실
“사회가 시끄러워지겠군요. 그럼, 진호님. 당신이 깨어날 수 있을까요?”
조금은 반투명한 유리 안에 한 청년이 잠들어 있었다. 지금은 죽어버린, 옐로-홍진호와 꼭 닮은 존재. 이 사회체제를 이룩하게 만든 존재가.
냉동된 탓에 파리한 피부는 조금 섬뜩했지만, 그와는 달리 그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저희 저그들은 당신을 세계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하긴, 옐로도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결코 깨우고 싶지 않다던 수뇌부의 결정을 지지했으니까요.”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 그 유리에 손을 가져가는 동작마저 조심스러웠다. 그 때,
“포에버님. 회의에 참석하셔야....”
“알았으니, 나가.”
말을 하다말고 유리 속의 존재를 보고 넋을 놓아버린 저글링 계급의 사원을 노려본 포에버-강도경은 잠시 애틋하게 유리 속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곧, 깨워드리겠습니다, 진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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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옐로는 콩의 아주 먼 후손.
저그는 콩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며, 깨울 수 있는 기술이며, 모두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일부러 깨우지 않고 있었음.
후계문제도 있고, 그보다 콩을 세상에 내놓으면, 콩이 언젠가 독립해서 떠날거라는 두려움도 있었으니까.
+ 임은 죽었음. 박서는 뭐, 임의 먼 후손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환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환생설정이 드러날 일은 없음. 임은 임. 박서는 박서. 그런고로 그냥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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