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2025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라헬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9.03 [신의탑/라헬밤]

바람에 흩날리며 빛에 옅은 갈색빛을 반사하는, 짙은 밤하늘색의 머리칼.

 

 

한 눈에 알아봤다.

어찌 잊을까? 내가 내 손으로 밀어 떨어뜨려버린, 너무나 사랑스럽고, 동시에 너무나 증오스러운 너를.

타인은 알아보지 못할지언정, 제 자신은 안다. 머리칼로 그 꿀빛의 눈을 가려도, 그 외모가 어찌 변해도, 제 자신만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오랫동안 지켜봐왔고, 사랑해왔고, 증오해왔으니까.

 

 

 

 

"스물..다섯번째, 밤. ...밤아."

 

 

 

 

가늘게 새어나온 목소리는 내 목소리와 달라 낯설었다.

 

 

 

 

 

[라헬올레] 애증

 

 

 

 

 

FUG가 선발인원으로 올라온다는 이야기는 꽤나 떠들석했다. 다리를 다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위장하고 있는 내 귀에 들어올정도였으니 얼마나 엄청난 소문인지는 알기 쉬웠다.

 

 

지금은 떨어져버린 상냥하고 다정한, 하지만 날 향하지 않는 지독히 냉정한 팀원들과 떨어져 쿤 아게로 아그니스, 그와 팀을 이뤘다. 상당히 능력있는 동료들을 잘도 모으는데다가 그는 밤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愛)인지, 우정(友)인지, 그저 단순한 정(精)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랬다.

 

 

그랬기에 그는 날 버리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지독하리만치 냉정하고, 잔인하지만- 제 맘을 쏟은 상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한 날 버려둘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언정 난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는데다가, 절친한 친우마저 잃어버린 가련하고, 안쓰러운 여자아이여야만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등대지기라곤하나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버려 전력이 될 수 없는 내가 다른 인물들과 쉬이 어울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쿤씨의 팀으로 빠져나온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슬슬 다리를 못 움직이는 흉내를 내는것도 지치는 만큼 서서히 재활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움직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FUG의 슬레이어 후보가 포함된 팀이 올라왔다. 우연히 그 근처에 있었던 내 눈에 띈 그들의 모습.

 

 

참으로 개성이 넘치는 일행이었다. 노란 머리칼의 남자부터 시작해, 연가의 표식을 단 여자, 어린 여자아이까지. 왁자지껄 시끄러운 일행에게 한발 떨어져서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며 빛에 옅은 갈색빛을 반사하는, 짙은 밤하늘색의 머리칼을 높게 올려묶고, 길게 기른 앞머리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린, 가늘고 여린 체격의 소년. 앞머리밑으로 드러난 고운 턱선과 핏기없는 얇은 입술. 칠흑의 천으로 제 자신을 감춘 모습. 그 몸에 얽힌 서늘하고 날카로운 공기는 낯설었지만, 알아차렸다.

 

 

스물다섯번째밤.

맹목적으로 날 따르던 순수하고 해맑던 소년. 지닌 지식이 없었음에도, 언제나 어둠 속에 갇혀 있었음에도 스스로 고귀한 아우라를 풍기며 빛나던 아름다움을 지녔던 너. 아무것도 없었기에 더 특별했고, 더 부러웠다. 탑을 간절히 바란것은 나임에도 탑이 선택한 것은 너였으며, 같은 시험을 받았으나 회피한 것은 나였고, 용기있게 맞선 이는 너였다. 나는 지니지 못했으나 자신은 선택받았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너무나 쉽게 손에 넣은 그 무시무시한 재능도. 스스로 화사하게 빛나는 빛은 사람을 끌어모았고, 너무나 쉬이 사람을 제 편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에 화가났다. 부러움과 질투를 넘어 증오스러웠다. 나는 그토록 원하고 원해도 가질 수 없는데, 그는 원하지 않아도 손쉽게 가지는 것이, 그러면서도 제 손에 쥔 것도 모른채 나만 바라보는 모습이.

 

 

'...라헬.'

'...같이가자.'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곳이라면..'

'내가..'

'데려다 줄 테니까.'

 

 

신뢰로 가득하던 꿀빛의 눈동자가 상처입은채 멀어져가던 그 순간이 머릿속에 플래쉬백 되어버려 순간 어지러웠다. 하지만 쓰러질 수 없었다.

 

 

 

 

"쓰러.. 질, 줄알아?"

 

 

 

 

순간 무심히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느려지며 정확히 내 쪽을 응시했다. 멀었고, 정확히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차렸음을 알았다. 왠지, 웃음이 났다.

 

 

 

 

[라헬.]

[밤.]

 

 

 

밤은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가 들리지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있음을. 간절한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어둠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순수하기만 하던 녀석을 물들인게 나였다.

 

 

 

"만나게, 하지않아."

 

 

 

결코 마주치게 하지 않는다. 그의 동료들이 그를 밤으로 인정하게 결코 놔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믿고있던 동료들에게 상처입으며 망가져버려. 후훗- 아하핫- 아하하하하핫!!"

 


Posted by Lucy_j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