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네가 날 죽여줄 수 있을까?"
세월에 지쳐 풍화되어 퇴색된 눈동자는 허하지만,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BoxeR는, 눈앞의 자그마한 청년을 바라봤다. 햇볕에 스러질 듯, 가녀리면서도 강자의 여유가 묻어나는 움직임을 지닌 그는, 어딘가 모순적이었다.
"YellOw. 뭐하는 거야?"
"아, Nal_rA. 별거 아냐. 그냥, 차기 테란의 황제가 보이 길래."
YellOw.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있던 BoxeR는 굳어진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저 약하고 가는 존재가, 테란의 재앙, 저그를 이끄는
흉신악살, 최악의 폭풍, YellOw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 BoxeR가 귀여운 듯 살짝 머리칼을 쓰다듬은
YellOw는 아무 미련 없이 BoxeR에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당신을 죽일 거야!"
"하하. 기대해보마, BoxeR."
"어이, YellOw. 어서와. 너 노닥노닥 거릴래?"
"아아, 간다, 가."
프로토스의 집정관 Nal_rA와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면서 멀어져가는 YellOw의 모습에 어딘가 불쾌해진 BoxeR는 조금 뚱한 표정으로, 가물가물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테란의 성장은 빠르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다음에 당신이 날 봤을때 당신의 옆에 내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기대해, YellOw.
*
YellOw에게 시간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었다. 저그의 오버마인드에게 수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만을 바래야하는 그런 상황. 처음에 뭣도 모르고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며 테란과 프로토스에게 있어 재앙이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날뛰던 과거와는 달리 너무 기나긴 시간이 지난 것일까? 흔히 말하는 안식이라는 것이 슬슬 그리워지는
YellOw였다. BoxeR에게 한 말도 그런 의미였다. 그 곱상하게 생겼으면서, 눈빛이 강해보이는 어린 테란의 꼬맹이라면
자신에게 안식이라는 것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자면, YellOw는 진심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짤짤 흔들면서
한껏 화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미친놈에게 그런 소리를 해서 안 그래도 불쌍한 삶을 저당 잡혔냐고. 다른 착하고 고운
놈들 많은데 왜 하필 고르고 골라서 미친놈이었냐고. 어쩌자고 통한의 실수를 반복 하느냐고.
YellOw에게 있어 미친놈은 저그의 수치(YellOw에게 있어 통한의 실수 1) GoRush,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날 죽여 달라고 했던 놈이 GoRush 못지않은 미친놈이었을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뻗쳐올랐다.
“내가, 테란 놈들, 모조리 몰살시키고 말테다. 씨발. 아, 진짜, 죽겠네.”
이를 아득아득 갈면서, 뻗쳐오르는 열불을 주체하지 못한 채 씩씩거리던 YellOw는 곧이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테란의 멸망이고, 자시고간에 우선 선행될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BoxeR, 그 새끼한테 어떻게 벗어나지? 진짜, 전대 황제, 그 개새끼, 내가 죽어서라도 이 원한은 안 잊는다. 으득.”
YellOw는 전혀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YellOw의 모습을 보면서 GoRush는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하긴
불쌍한데, 왠지 웃기는 광경이었다. 그나마 하이브 안에서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YellOw를 존경하는
수많은 저그종족들이 저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GoRush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
“쯧쯧. 어쩌다가 그 독한 놈한테 걸려서는..”
“무슨 개소리야?”
굉장히 불쌍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선대 테란의 황제는 YellOw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BoxeR가 자신이 집착하는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집요한지 아는 그로서는, BoxeR의 집착대상이 되어버린 YellOw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테란의 적인 저그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아무리 적이라고는 하지만, 오버마인드의 그 길고 긴 삶을 생각해보자면, 아직 창창한 미래가 남아있는
YellOw가 아니었던가?
“BoxeR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있어서는 결코 놓치지 않지.”
“그래서?”
“축하하네. 그 대상이 자네라니.”
“고작해야 꼬맹이가 무슨.”
*
“전대 황제 놈이 나이가 들어서 노망이 났나, 생각했던 나도 바보였어.”
그나마 영리하니 머리가 장도리 꽤나 말이 잘 통하던 전대황제의 그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테란이란 나이가 드니 저리 판단력도
떨어진다면서 동정하던 과거의 자신에게 그야말로 ‘네가 나이가 들어서 판단력이 떨어진 거다!’ 라고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때 내가 미쳤었지. BoxeR 그 새끼가, GoRush 너보다 더 미친놈일 줄이야.”
“어? 잠깐, YellOw, 갑자기 나는 왜?! 내가 뭐가...”
“닥쳐봐. 제길, 드랍쉽이다. 나 나갈 테니까, BoxeR 그 새끼한테는 알렸다간 너 죽는다.”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는 중간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에 반박하려한 GoRush였지만, 그런 GoRush의 말을 끊고 YellOw는 창문을 열어젖혔다.
빨리 도망가야 한다.
YellOw에겐 그 생각뿐이었다. 조금 높긴 했지만, 오버마인드의 능력을 사용해 도망가기 위해 창틀에 올라선 YellOw였으나, 곧이어 싱글벙글 웃으며 왈칵 문을 열고 들어오는 BoxeR의 모습에 YellOw는 그대로 굳었다.
“오랜만, YellOw. 반가워.”
“난 안 반가워. 미친놈.”
“애정표현이 격하네, YellOw는.”
능글능글 웃으며 다가오는 BoxeR의 모습에 YellOw는 정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BoxeR와의 인연을 모조리 지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우선은 저 능글맞은 BoxeR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었다.
“황제라는 놈이 안 바쁘냐?”
“내 밑에 NaDa라던가, oov라던가, 능력 있는 녀석들 많으니까.”
왜, 저런 미친놈 곁에 능력 있고, 정상적인 놈들이 많은 거지? 내 밑에는 GoRush, 저그의 재앙이 있는데? 그나마 July라도 없었다면, 저그에게 미래는 없었을 거야.
잠시 저그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YellOw는 곧이어 자신이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BoxeR를 응시했다.
얼굴은 곱상하니 예쁘게도 생겼네.
잠시 얼빠로서의 본능에 충실하던 YellOw는 제 손목을 잡아오는 BoxeR의 행동에 그대로 기겁했다.
“우리 같이 침실로 갈까?”
“미친, 한낮에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그럼, 밤에는 괜찮다는 거네?”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발언이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에 YellOw는 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YellOw의 표정과는 달리
BoxeR는, “역시 YellOw도 내가 싫지는 않았다는 거네.” 라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을 침실로 끌고 가고 있었다.
아, 나란 녀석. 누가 나 좀 구원해줘.
진심으로 YellOw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본 YellOw였으나, 생글생글 웃으며 배웅하는 GoRush의 모습에 그저 체념해버렸다.
“난 , 인복이 없어.”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YellOw.”
“네가, 최악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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