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맑은 하늘. 따스한 날씨. 아무런 일이 없어도 기분이 좋아질듯한 그런 평온. 눈앞에 여인과 남자가 있었다.
“어머, ――――. 어서 오렴!!”
“――――. 안 오면 빼놓고 아빠랑 엄마만 가버린다~”
“네-!!!”
여
인과 남자의 말에 대답을 한 것은 자신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붕- 뜬 기분으로 관찰하는 자신이 있었다. 참으로 단란한 가족이었다.
부드럽게 웨이브진 길고 붉게 빛나는 머리칼과 맑고 투명한 녹색 눈동자를 생기 있게 빛내는 우아한 여성과 장난스레 웃으며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헝클어진 흑발과 부드러운 갈색 눈의 남자. 그들 사이에 웃고 있는 사내를 닮은 흑발과 여인을 닮은 녹색 눈의
아이.
꿈이다. 결코 이뤄질리 없는 그런 슬픈 꿈.
자각몽(自覺夢)임을 깨달아도 이 꿈은
끝나지 않는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차라리 잠에서 깨버리면 좋겠지만, 이미 경험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리 없음을 안다. 너무도 괴롭고, 힘겨운 날 지치게 만드는 행복한………………… 악몽(惡夢).
멍하니 그들을 응시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반적인 가족이다. 자식의 어리광에 혼내면서도 웃으며 바라보는 어머니도, “다신 그럼 안 된다.” 라고 근엄하게
말하곤 선물을 건네며 장난스레 웃는 아버지도, 그런 그들의 상냥함에 어리광을 부리며 아픔 따위 모르는 듯 티 없이 맑게 웃음을
터뜨리는 자신도. 그것은 단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그런 행복이었다.
그 모습이 역겨워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났다. 꿈속의
아이는 자신이되,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웃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괴로운데. 저리 순수하고 티 없이 웃는 웃음 따위 단 한
번도 지어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 아이와 자신이 같을 수가 있을까?
미친 듯이 웃고 싶고ㅡ 세상이 무너질 듯 울고 싶다.
나는 이리 괴롭다고. 꿈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나의 부모에게,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해하는 꿈속의 나에게 소리 지르며 하소연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생각임을 알기에 그저 관조자로서 이 꿈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가 흔들린다. 이제 깨어날 시간이 다 되었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조금만 기다리렴.”
“네, 엄마”
여
전히 꿈은 진행된다. 다정한 웃음으로 말을 건네는 어머니와 웃으며 답하는 꿈속의 자신. 이제 거의 끝났음을 알기에 조금 더
어머니의 얼굴을, 그 미소를 바라본다. 꿈은 너무도 괴로우나, 자신의 어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꿈이 유일하다. 그러기에
괴로우며, 그러기에 아쉽다.
「.......일어....리.!」
「당장...나.......해.!!!」
밖
의 음성이 들리며 꿈속의 세계가 서서히 무너진다. 많이 들어본 신경질 섞인 음성. 이제 더 이상 어머니와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들을 선명히 기억해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 부모님의 목소리. 아무리 자각몽이라 한들 꿈에서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할 자신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시선이 떨어지질 않는다.
「당장 일어나라, 해리!!!!」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음성이 귓가를 파고들며 시야가 점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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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려진 시야로 비치는 것은 신경질적으로 틀어 올린 흐린 금발과 짜증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나. 당장 일어나지못해!!”
“...네. 그러도록 하죠.”
잠시 눈을 깜박이며 느리게 대답하는 해리를 보던 여자- 이모인 페투니아 더즐리가 사라지자 해리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옆에 놓인, 옷이라기보다는 넝마에 가까운 천조각을 걸쳤다.
낡
고 조악한 옷차림에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 그리고 잔뜩 여위어 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체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해리는
고귀한 도련님을 연상케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고아인데다가 제대로 된 교육조차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닌 선천적인
우아함과 기품 때문인지, 아니면 그 맑고 투명하지만 어두운 녹색 눈동자에 깊이 깃든 오만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해
리는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가 더즐리가의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들은 해리를 보고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도
해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한쪽에 놓인 쟁반위의 음식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그 사이 해리에 대한 관심을 끊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비웃음이 나왔다. 페투니아가 만든 음식은 엉성하기로 유명한 영국 요리 중에서도 더더욱
엉성했다. 그녀는 그다지 음식솜씨가 좋은 편이 아니었고, 미각이 민감한 해리로서는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간신히
1/3정도쯤 먹은 해리는 쟁반을 한쪽으로 놔둔 뒤 눈을 감았다. 아래층에서 즐겁고 행복한 더즐리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
아가 되어버린 조카를 거둬들인 친절한 가족」 이라고 한다면 듣기에는 참으로 좋은 미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여동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거둬들였다, 라고 한다면 더더욱. 이 곳, 프리벳가 4번지에 거주하는 더즐리 부부가 바로 그
미담의 주인공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을 사람들은 더즐리 부부를 칭송했고, 그들의 넓은 마음씨에 감탄했다. 진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이 해리를 거둬들인 것은 그들 부부의 자의가 아니었으며, 거둬들여진 아이 해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외부인들은 그 어느 것도 알려하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해리가 더즐리 부부에게 폭력적인 학대를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타인의 눈을 너무도 신경 썼고 자신들이 얼마나 온화하며 상식적인 인물인지를 알리고 싶어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해리는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아이였고, 해리를 돌봄으로서 그들의 온화함과 친절함의 상징이 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드러나는 폭력에는
민감했다. 하지만 해리는 차라리 폭력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종종 생각하곤 했다. 드러나지 않는 폭력은 더욱 은밀하고, 더욱
잔혹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깨끗하고 상처하나 없어보이지만 이 조악한 천조각을 풀어내면 드러나는 상처는 얼마나 참혹한가.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해리의 몸은 온갖 상처와 피멍으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 폭력보다 더 잔혹한것은 그들의 무관심과 냉대였다.
더
즐리가의 가장이자 이보부인 버논 더즐리는 그루닝스라는 드릴 제작 회사의 중역으로 마을 내에선 꽤나 지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살이 뒤룩뒤룩 찐 몸집이 큰 사내로, 코밑에는 커다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버논은 지극히 무심하고
냉담한 인간으로 그들의 가족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인물이었지만, 자의가 아닌 타의로 거둬들인 해리에 대해 차가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이자 해리의 이모인 페투니아 더즐리(처녀적 페투니아 에반스)는 비쩍 마른체구에 흐린
금발을 지닌 여자로 3년 전 그녀가 부모님의 장례식장을 마지막으로 헤어진 여동생 릴리 포터(처녀적 릴리 에반스)는 그녀에게 있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존재였다. 그러했기에 그녀는 조금이라도 릴리를 생각나게 하는 녹색의 눈동자나 적갈색으로 아름답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늘 혐오의 시선을 향했고 끔찍스러워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해리는 그녀의 비틀린
증오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해리의 눈동자는 제 어미인 릴리의 녹색 눈을 그대로 옮긴 것만 같은 맑고 청명한 심록색이었고, 이목구비
하나하나는 제 아비와 같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릴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했기에 그녀는 불합리한 증오와 분노를 해리에게 쏟아
부었고, 해리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집안일들을 도맡아해야만 했으며 어린 해리의 부족함에 부조리한 폭력을 사용했다.
사
촌인 두들리 더즐리는 해리와 동갑인 사내아이였는데, 커다란 핑크빛 얼굴에 목은 거의 없었고, 작고 연한 푸른색 눈에, 숱 많은
금발을 가진- 페투니아의 말을 빌리자면 어린 아기천사, 해리의 시점으로 볼 때는 가발을 뒤집어 쓴 돼지와 닮은 아이였다. 두들리는
해리의 3배는 넘을 법한 체격의 소유자로 페투니아의 행동을 옆에서 보고 배운 탓에 해리에게 짓궂은 장난과 괴롭힘을 퍼붓곤 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이용해 해리를 향해 정당하게 팔·다리를 휘두르는 난폭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해리는 쉬이 당해주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런 경우 얄궂게도 페투니아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두들리의 행동으로 인해 더 많은
꾸지람을 듣게 되었으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한도내에서는 적당히 당해주는 척 하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자신이 강해서 그런
것이라며 우쭐대는 꼴이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지만.
해리는 프리벳가 4번지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아이였다.
해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나치도록 잘 알고 있었다. 이모인 페투니아는 그 자신의 여동생이자 제 어미인 릴리를 지독하게 미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미움이라던가 증오라는 그런 간단하고 손쉬운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원래 아이란 호의와 적의에 민감한 법이다.
그러했기에
해리는 자신의 이모인 페투니아의 요구를 아무리 맞추더라도 자신이 결코 사랑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그토록 어머니를 미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짐작은 있었으나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낡게 헤진 이불 쪽을 잠시 응시하던 해리는 흘끗 시계를 바라보고 지금 시간이면 버논이 출근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늦게 내려간다면 짜증으로 점철된 페투니아의 잔소리를 들어야할 터였다.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은 해리였기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쟁반을 들고 문 밖으로 나서야만했다.
“조심해서 다녀와요, 버논.”
“아아, 다녀오지. 우리 두들리도 잘있거라.”
기
분이 좋은 듯 잔뜩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해리는 귀를 막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해리는 식탁 위에 잔뜩
어질러진 접시와 음식물 찌꺼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런 해리의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 경멸어린 눈동자로 잠시 응시하던 페투니아는
두들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 익숙해진 해리는 아무런 대꾸 없이 설거지통에 담긴 그릇들을 씻기
시작했다. 그것이 해리의 하루일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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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빨래를 널고, 점심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또다시 점심 설거지. 그 이후 집을 청소하고, 마당의 잔디를
치우고, 마른 빨래를 걷고, 저녁식사 준비. 식사시간에는 방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식사 후에는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잡다한
정리가 끝나야만 해리가 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다 끝나고 나면 이미 저녁 10시를 훌쩍 넘겨버리고 만다. 이제
고작해야 7살, 게다가 해리의 체구는 제 나이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작다. 그렇기에 모든 일이 끝나고 계단 밑 벽장으로
돌아온 해리는 잔뜩 지친 채 이불에 털썩 누웠다. 지독히도 피곤했다. 하지만 차라리 피곤한 것이 나았다. 정말로 기절할 만큼
힘들어지면 밤에 악몽은 꾸지 않으니까.
해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조심스럽게 이불 밑을 뒤적거렸다. 한참을 더듬거리던
해리의 손에 드디어 원하던 물건이 잡혔다. 조심스레 꺼낸 그것은 굉장히 낡은 사진이었다. 완전히 찢어진 사진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테이프로 이어붙인 그 사진 속에는 네 명의 남녀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억지로 찍힌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였다. 다른 두 명에 대해서 해리는 알지 못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였다.
해리 제임스 포터(Harry James Potter)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
버지의 이름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의 이름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단 한번 페투니아가 지독하게 증오어린 얼굴로 사진을
바라보며 ‘릴리’라는 사람을 향해 퍼붓던 저주를 본적 있었다. 귀기어린 얼굴로 한참동안 사진을 노려보던 페투니아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사진을 엉망으로 찢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그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녀가 불에 태워버렸다면 해리는 제
부모님의 얼굴조차 모른 채 있었어야 했을 테니까. 쓰레기를 비워야 한다는 핑계를 가지고 들고 나온 쓰레기통에서 조심스레 찾아서
테이프로 붙인 사진 속에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과 동일한 색의 눈을 지닌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조심스레
감싸 안은 흑발의 아버지가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그 누가 봐도 해리는 그들의 아이였다. 해리는 혹시라도 손상이라도 될세라
조심스럽게 사진을 껴안았다.
“아빠... 엄마....”
해리에게 아빠와 엄마라는 단어는 제일 낯선 단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어? 왜??”
눈
물 따위 아무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해리는 울지 않았다. 자신은 그리 나약하지 않다고 그리 되뇌며 지내온 해리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해리는 이유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괴로운 기분이 들어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리
괴롭게 울던 해리는 조심스레 사진을 다시 이불 밑에 숨긴 뒤 자리에 누워 형광등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시 깜빡깜빡 거리던
형광등은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직 불이 꺼졌다. 다른 평범한 아이라면 놀라야 할 테지만 해리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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