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맑지만 싸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추웠다. 목적없이 그저 길을 거니는 것은 상당히 오랫만이었다. 아니,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제나 무엇인가 목적을 지니고 일분 일초도 아깝게 사용하던 자신이었다.그랬기에 이런 자신이 어색하면서도 낯설다고 느껴졌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이리 정처없이 걷고 있는 것일까?
"아카시군."
무심을 가장한 , 상냥하고 온화한 목소리가 들리며 그의 어깨를 살짝 건드려오는 손이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은 언제라도 공기속에 녹아들 듯 가늘고 희박한 존재감의 소년이었다.
"쿠로코."
호칭이 낯설다고 생각하면서도 , 느릿하게 그를 불렀다. 무표정한 주제에 알기 쉬운 소년, 쿠로코 테츠야는 아주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어느새 그의 옆에서 걸으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하늘빛 눈동자가 다시 없을만큼 온화하고 상냥하게 반짝였다.
아직도 널 보는 것이 힘든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서 널 만난 것을 기뻐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목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길은, 익숙한 곳이었다. 체력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종종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걷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자랑스레 그에게 알려주던 길이었다. 벌써 잊었다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길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목적은 너였다.
쿠로코 테츠야라는 존재가 목적이었다.
"이곳에서 아카시군을 볼 줄은 몰랐습니다."
"잠시 바람을 맞는 것도 좋으니까. 그러는 너야말로 이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
의아한 듯 궁금증을 품은 눈동자가 언제나처럼 올곧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쿠로코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쿠로코의 발걸음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일이고 오후지. 원래라면 농구 연습을 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아.."
언제고, 어느때고, 그 누구보다 농구에 제 목숨을 건 듯, 올곧게 농구만 바라보던 소년이었다. 주변에 눈을 돌리면서도 그 이상으로 소중하게 농구를 안고 있었다. 너무나 소중한 농구를 함께 했기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동료였다. 그랬기에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그런 소년이 평일 오후에 농구를 하지 않는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최근 훈련이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쉬자고 감독님이 말했으니까요. 몰래라도 하고 싶은데 걸리면 후환이 두렵습니다."
"평범한 여성은 아니지."
"네."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한없이 즐겁다. 너의 이런 표정을 보고싶었다. 어느 순간 즐거움보다는 고통과 절망으로 얼룩진 채 자신을, 동료를 응시하는 모습이 아니라 정말로 즐겁고 즐거워서 주체할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지금은 즐거워?"
"네."
덧없이 아름답고, 덧없이 가녀리던, 중학교 때의 너도 좋지만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차 생기있게 반짝이는 네 모습도 좋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제 스스로 무엇인가를 내세우기보다는 그저 주변에 스며들듯 이끌려다니는 것이 어울릴것같은 그런 모습이거늘 언제나 심지가 굳고 강했다. 누구보다도. 제 자신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내게조차 반발할 수 있는 강함이 있었다. 만약 네가 보이는 것처럼 덧없고 약한 존재였다면 나는 네게 끌릴일도, 너를 바라볼 일도 없었을 터.
자각하게 된 마음이 괴롭다.
"어디 아픈겁니까?"
조금 걱정어린 눈동자가 저를 향했다. 무표정하거늘, 우습게도 그 누구보다 풍부한 감정표현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농구 연습이 없다면 남은 시간엔 특별히 할 일은 없겠지?"
"..네. 정말 괜찮은겁니까."
"아아. 나도 어차피 산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남은 시간 나와 같이 어울려주지 않겠어, 쿠로코?"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음을 숨긴 채 손을 내민다. 내 손 위로 희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남자의 것임이 드러나는 손이 겹쳐진다.
"좋습니다."
싸늘한 날씨이거늘, 맞잡은 손이 뜨겁다.
"...좋네."
"? 무슨 소리입니까?"
"그냥, 상황이 참 좋은 것 같아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너와 발걸음을 맞춘다. 자각한 이상 조심히, 하지만 결코 널 놓치지 않는다.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니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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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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